탕을 데울만큼의 뜨거운 사랑
이상하게, 가짜 이야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눈물이 흐른다.
아마 죽음이란 주제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느 다큐에서 봤는데, 태아가 낙태 기구를 피해 움직이는 걸 봤다.
생물은, 죽는 순간까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나보다.
그래서 종교가 무섭다.
엄청난 힘을 갖는다.
매불쇼 시네마지옥에서 최광희가 추천한 영화다.
사실 이 영화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영화는 잘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괴물' 이란 영화는 올해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다.
일본 영화가 그렇다.
좋은데, 뭔가 꺼려지는....
(반일감정은 아니다)
주인공 여자의 사연이 기막히다.
그래서 와 닿지 않는다.
극단적이다.
아마 미국영화였으면, 이 여자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성이 아닐까 싶다.
그냥 다 받아 들인다.
저항할 생각도 없다.
그래서 자민당이 영구집권하나보다.
스포발사!
여자의 남편은 바람 나 도망갔다.
여자의 엄마도 바람 나 도망갔다.
여자가 키우는 딸의 친모도 도망갔다.
남편의 정부도 바람 나 도망갔다.
여자는 묵묵히 그 뒷처리를 담당한다.
자기 자식이 아닌 두 명의 딸을 지극정성으로 기른다.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부정해도, 돌장식 하나 던지는 걸로 끝낸다.
물론 마지막에 많은 사람들과 가족의 애도를 받으며 죽는다.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가족들을 데운다.
여자는 왜 화를 내지 않을까?
여자는 어떻게 이렇게 올곧을까?
불가능하다.
일본인 특유의 신격화다.
더러운 과거와 출생을 가져도,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안 된다.
그런 일은 없다.
누군가 죄를 지었다면, 반드시 그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일본이 한국에 사과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훌륭해 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훌륭하다고 말한다.
사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부역자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난 믿지 않는다.
상처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는다.
사과해도 치유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사과해야 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고통스러울 때마다.
추신: 영화 속 오다기리 죠가 나와 정말 많이 닮았다. 물론 생긴 것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