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비스커스 May 05. 2024

퓨너럴

아마 내가 평생 본 영화 중 가장 재밌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시간이 난다면, 한 번 보는 걸 추천한다.

유머 그 자체다. 


내가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꽤 오래 살았다. 

어떻게 시간이 간지 모르겠다. 

그냥 글 쓴다고, 영화보고, 분석하고, 끄적거린 게 다다. 

텅 비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평생의 감정을 단 한 단어로 표현하면 '관'이다.

'운명' 은 아니고, 답답함이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상상했던 가장 공포스런 장면은

우주의 미아가 되는 것이었다. 

캄캄한 우주에, 아주 작은 우주선을 타고, 영원히 끝없이 떠다니는 장면말이다.

그건 관에 들어간 감정과 같다는 걸 나이 든 후에 알았다.


내가 아마 좀 더 용기 있었다면, 난 떠돌이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난 착한 자식이 되고 싶었다.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얌전한 아이.

그래서 늘 화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마치 마그마처럼. 

어딜 가지도 못하고, 가만있지도 못하고.

꾹꾹 누르다 보니, 습관이 됐다. 

아마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 글은 어둡다. 

그래서 내 글은 밝지 않다.

그래서 내 글은 재미없다. 

그래서 난 망했다. 


변명같은데, 문득 깨달은 게 있다. 

삶이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모든, 기쁨, 슬픔, 괴로움, 과오는 

내 부모에게서 온다. 

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만은 내 것이다.

그 고통은 내가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안고 죽을 때까지 사는 거다.

그것 뿐이다.


굿 윌 헌팅에서 교수는 소년에게 말한다. 

'니 잘못이 아니야'

그렇다고 소년이 치유된다고 생각치 않는다. 

아픈 건 사실이다.

다만 누군가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게 된다. 


지금 방황한다면, 지금 괴롭다면, 지금 슬프다면

그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취업을 못하거나, 재수를 하거나, 감옥에 있다면

원하던 원치않던 부모 탓이다. 

교수 자식이 깡패가 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렵다. 


자기개발서를 수천권 읽어도

명상을 수백시간 해도

정신과를 몇 년 다녀도

변하지 않는다. 나아지지 않는다. 

그 때뿐이다. 


다만,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 잘못이 아니다.

부모를 탓하라는 게 아니다. 

풀 수 없는 문제로 평생 시간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최악의 이웃과 사랑에 빠지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