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의 젊음
청소기 세척을 담당하는 회사였다.
공장 안은 당연히 먼지가 있었다.
다행히 목이 탁할 정도로 심하진 않았지만, 필연적으로 먼지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난 그것도 모르고 지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란 것만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보수와 거리도 보았다.
세척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몰랐다.
솔직히 식기세척기를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다른 구인광고에 나온 내용 때문이었지도 모른다.
접시 닦는 일이었는데, 세척기가 있으니 가벼운 애벌만 한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에어건으로 청소기의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일이었다.
에어건으로 청소기 본체를 쏘면 뽀얀 미세먼지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유리막이 있었지만, 양손을 넣은 구멍으로 먼지가 빠져나왔다.
알고 보니, 이 일은 신참이 하는 가장 험한 일이었다.
후임이 오면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떼는 일로 옮기는 거 같았다.
난 알바로 들어갔는데, 오래된 알바 청년들이 테이프를 떼고 있었다.
나의 우려와 달리, 그곳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둘 있었다.
한 사람은 남자로 66년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목소리가 굵어 인상적이었는데, 알고 보니 음악을 했다고 한다.
사업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집에서 놀기 뭐해 나왔다고 한다.
그는 4월에 입사했는데, 이제 정규직이라고 했다.
그는 나와 달리,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불량을 찾아내는 일을 했다.
전산 쪽 일은 정규직만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한 사람은 그가 소개해 줬는데, 62년생 여자분이었다.
그분은 내가 넘긴 청소기를 걸레로 닦는 일을 했다.
그분과 함께 일하는 동료는 20대로 보이는 조금 통통한 여자였다.
난 일에 익숙하지 않아 그 할머니한테 몇 번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예의를 갖춰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후 그분과 난 조금 친해지기도 했다.
그분은 66년생 남자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정규직이 아니었다.
이유는 아들, 손자 같은 애들하고 같이 일하는 것도 껄끄러운데 굳이 정규직까지 되고 싶진 않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다.
아마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알바가 편했던 거 같다.
나중에 나에게 일을 가르쳐준 34살 남자에게 물었더니, 정규직이라고 급여 차이가 큰 건 아니라고 했다.
자신도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정규직이 되었다고 한다.
62년생 할머니에게까지 정규직을 제안할 정도면 그게 크게 의미 있는 벼슬 같진 않았다.
'남의 돈 먹기 힘들어'
할머니가 내게 한 말이었다.
나 역시 이에 백 프로 동의한다.
이 일을 구하기까지 난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었다.
평생 글만 쓴, 운전도 못하는 날 고용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미세먼지를 하루 종일 들이마셔야 하는 일을 빼곤.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
돈은 손에 쥔 모래처럼 흘러내린다.
아니 어쩌면 물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쥐자마자 순식간에 흘러내려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이 사회는 우리에게 죽을 만큼 일을 시키고 죽지 않을 만큼의 돈을 준다.
투정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핀잔을 듣는다.
'그러게 젊어 돈을 모았어야지. 주위를 봐. 안정된 노후를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다 네 탓이야.'
이 글은 그런 행운아들에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나처럼 실수투성이, 철부지, 뜬금없는 낙천주의자를 위한 글이다.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
우리가 후회하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
불안한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의미 없다고? 나도 안다.
어차피 우리 인생도 의미 없다.
우리 인생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없다.
그러니 뭐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