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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Feb 24. 2023

당신이 경찰서에 가면 알게 되는 것들

공무원일 뿐이다. 

난 고발 사건으로 경찰서에 갔었다. 

억울한 일을 당해, 법이 해결해 주길 바라서였다. 

내가 피해자인데도 경찰서는 위압감을 준다.

고발, 고소를 하면, 휴대폰으로 몇 날 몇 시에 오라고 문자가 온다. 

더 이상 아무런 설명도 없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가 있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변호사에게 물으니 별거 없고 사실 조사만 할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래도 난 긴장되었다. 


해당일에 나는 경찰서로 들어가 담당부서를 찾았다. 

나만의 기분인지 몰라도, 여름임에도 실내는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경찰서에 들어가면 우선 놀라는 건, 그 안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다 경찰인지,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잘 모른다. 

뒤죽박죽이다. 사실 구분도 안 된다. 

정말 터미널 대합실처럼 오밀조밀, 다닥다닥 앉아 조사를 받는다. 

옆사람, 뒤 사람의 이야기가 다 들린다. 

솔직히 너무 시끄러워 경찰이 하는 질문이 잘 들리지 않았다. 

다시 질문을 물으면, 형사는 짜증 난 표정으로 쳐다본다. 

내 경우,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중소기업 대표였는데 모 유명 여가수의 동생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3억 정도 투자자금으로 건넸는데, 그 후 감감무소식이란다. 정말 여가수의 친동생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경찰 조사를 받으며 느낀 첫 번째는 그들은 내 사건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쉽게 설명하면, 공부하기 싫은 학생한테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내가 하는 소리를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같은 질문을 계속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게 수사과정이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정말로 사건에 대해 몰라 묻는 것이다.

그건 내가 불송치 결정문을 받고 알게 되었다. 

아주 기본적인 사실에서도 오류가 있었다.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거 같았다.

경찰이 원하는 건, 고소, 고발이 사건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사건이 되면, 한마디로 수사를 해야 한다.

조서를 꾸며야 하고 검사한테 보고도 해야 하고, 여러모로 귀찮다. 

그래서 제일 많이 쓰는 게 증거불충분이다.

어제 실화탐사대를 봤는데, 남편에게 성폭행당한 여자에게 모든 항목에서 증거불충분이 나왔다.

일방적으로 집단폭행 당한 학생에겐 쌍방폭행이 나왔다. 그 학생과 가족들은 이후 자살시도를 했다고 한다.


'언제쯤 수사를 시작하나요?'란 나의 질문에 내 담당 형사가 앉은 채 커다란 캐비닛을 열었다. 

서류더미가 쌓여 있었다. 흡사 그 장면은 고물상의 폐지더미를 연상시켰다. 

그들은 아직도 서류를 만들고 있었다. 마치 일본의 행정시스템을 보는 듯했다.

형사는 나에게 참고자료를 보내달라고 말했는데, 시디로 구워달라고 했다. 

(사전에 말했다면, 난 준비해 갔을 것이다. 이메일도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 안 된다고 했다)

요즘 시대에 시디로 구워달란다. 

시디가 없는 컴퓨터가 태반인 세상인데......

난 군말 없이 시디를 사서 구워서 등기로 보내줬다. 

백 프로 확신하건데, 그는 그걸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극한직업'  나오는 형사들은 현실의 모습 그대로이다.

막무가내고, 승진에만 눈이 멀고, 회식 때만 화색이 돌고, 작은 사건엔 관심도 없다. 

닭 튀길 때 더 재능과 열정을 발휘한다. 

어쩜 그렇게 완벽하게 경찰서의 풍경을 묘사했는지 기가 막힌다. 

그래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거 같다. 

영화는 현실의 거울이다. 


혹시 여러분이 억울한 일을 당해 경찰서를 찾으려 한다면, 웬만하면 그만두라고 말해주고 싶다.

별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울화통만 터질 것이다. 

당신 옆에 변호사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억울해도,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아라. 

절대 일확천금을 노리지 말고, 아무리 친절해도 사람 믿지 말고,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지 마라. 

누군가에게 인기 있으려, 잘 보이려 노력하지 마라.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잘할 생각이나 해라.  

누가 대체할 수 없을 만큼의 실력을 길러라.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


왜냐면, 이 세상에 당신 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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