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준
미친 사람들이 많다.
tv만 켜면 나온다.
국회에서 자고, 법원에 난입하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다.
젊은이, 늙은이 가릴 것 없다.
증오로 가득찬 사람도 많다.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죽어라 미워한다.
왜 일까?
행복해지려고 그런거다.
그 짓이 행복을 주리라 여긴다.
신을 빙자해
증오를 발산한다.
난 이제 늙었다.
난 지금 아는 것도 없다.
난 가진 것도 없다.
시간도 많지 않다.
가장 슬픈 건, 젊지 않다는 현실이다.
그런데, 난 나 자신을 모른다.
내가 날 모른다.
나의 기준이 남이다.
남에게 반사된 내 모습을 나라 믿는다.
웃긴다.
날, 남에게 반사한 날, 나라 할 수 있을까?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난다.
오늘 설거지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내가 조금 나아지는 거 아닐까?
지금 내 환경이 조금 나아지는 게 아닐까?
내 기준의 환경을 말하는 거다.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이 아니다.
난 여태, 대한민국의 중산층. tv 속 삶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거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데, 내가 행복하고 만족할 수 없고, 도달할 수도 없다.
그 유명한 말.
사실 그 뜻이 와전 된 말.
'너 자신을 알라'
행복은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제너시스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가장 비싼 차라고 타면 행복할까?
남들이 '우와' '성공했네' 하면 행복할까?
과연 제너시스를 살 수나 있을까?
행복은 나만의 것이다.
남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지 못한다.
그건 연극이다.
어쩜 나의 두려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럼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