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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케인

아프지 않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데

by 히비스커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한국 영화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반창꼬?

한국 영화는 내용이 잘 생각이 안난다.

노보케인은 좀 더 현실적이다.

주인공은 혀가 잘리는 걸 모를까봐

씹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은 25세 정도 밖에 못 산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그를 가뒀다.

당연히 사회성이 제로다.

대신 책을 많이 읽어 박학다식히다.

젊은 나이에 은행 부지점장에 오른다.

이게 주인공의 설정이다.

나름 신선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국도 한국도 망했다.


왜일까?

너무 잔인한데, 거북하다.

고통을 못 느끼는데, 멀쩡한 게 이상하다.

고통과 기능은 다른 건가?

아닌 거 같은데......


삶도 그러면 좋겠다.

고통과 감정이 연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시당하고, 후회하고, 좌절해도

아무렇지 않게 생활할 수 있으면 말이다.

요즘 배고파서 죽은 사람은 많지 않다.

대신 상처받아서, 자살하는 사람은 하루에 40명이다.

아픈데 아무렇지 않다면

그 다음날 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감정이 없다면, 살아야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행복은 즐거움이다.

고통도 감정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게 행복이다.

문제는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나 보다.

타인의 고통을 보려고.

결국 즐거움을 느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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