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태어났으니 산다.
이 말이 맞다.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냥 세상에 나온 거다.
여기서 중요한 답이 나온다.
내가 사는 이유는
부모가 원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딸을 바랐을 수도 있다.
대를 이어, 부모의 요구에 충족하려 했을 수도 있고
노동력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생겼을 수도 있다.
어쨌건 다 나름의 용도가 있다.
그 중 아이의 의견은 없다.
그러니 아무리 찾아도 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거 아닐까?
누군간 승용차를 집처럼 사용한다.
불편하다.
좌석은 침대가 된다.
누군간 콘테이너를 집처럼 사용한다.
불편하다.
그렇다고 못 살건 아니다.
사람은 다 쓰임에 따라 태어난다.
자신에게서 찾지 말고
자신의 부모, 조부모를 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면
자아를 찾을 수 있다.
콩 심은데, 콩난다.
팥 심은데, 팥난다.
자신의 쓰임을 아는 순간,
행동하게 된다.
거듭 말하지만, 아무리 내 안에서 찾아 봐야
없다.
알 수 없다.
그건 마치,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소처럼 살겠다는 것과 같다.
사람은 나무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