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
도라지를 먹은 줄 알았는데, 산삼이었다.
그 죄로 버려졌다.
웃기는 건 그게 산삼이란 증거가 어디있나?
산삼이라 우기면, 산삼이 되나?
안 먹었다 우기면, 똥이라도 헤집을 건가?
웃기는 설정이다.
근데 세상이 또 그러니 아니다 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가장 슬픈건, 부족한 부모가 그걸 따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신 자신보다 더 약한 자식을 탓한다.
남 앞에서 자식을 때리고 욕한다.
그리고 부자 앞에서 굽신거린다.
배를 까고 아양을 떤다.
한국 영화에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이,
부모가 자식을 옆에 두고 무릎 꿇는 모습이다.
(임창정이 떠오른다)
그걸 감동이라고 표방한다.
쓰는 작가도 찍는 감독도 발라당 배를 까는 강아지 같다.
그 장면에 눈물 흘렸다면, 관객도 마찬가지다.
우린 그렇게 학습된다.
아예 대항할 싹을 잘라버린다.
스스로.
그리곤 더 약한 이들에게 같은 걸 강요한다.
더 악랄하게.
그래서 일본을 미워하지 않고 미국을 숭배한다.
오히려 한국인을 증오한다.
가난한 보수가 있다.
반지하 사는데, 죽어라고 부자를 옹호한다.
왜 일까?
그건 계급을 숭상하는 거다.
자신이 남자인 게 계급이다.
그 계급 서열에서 단 하나가 우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자 위라는 거.
그러니 부자, 권력자 밑에 있어도 괜찮다.
내 밑에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일종의 자기 방어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늙은 여자 킬러가 종교지도자를 죽이러 간다.
이제 이런 장면에 아무 감흥이 없다.
왜? 어떤 사이비 종교 지도자도
영화 속 그가 자신이라고 전혀 생각치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치한 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