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달라졌나?
난 예술인 등록이 되있다.
그래서 12번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 중에는 tci 검사도 포함된다.
난 무엇이 달라졌을까?
처음엔 나이들어 이런 상담을 받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집 밖으로 나가야겠단 욕망으로 시작하게 됐다.
경제적 문제, 노화, 일 등등으로 힘들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뭘 기대한 건 아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는 걸 이젠 안다.
그래도 전문가는 내가 보지 못하는, 알지 못하는 뭔가를 낚아챌 수 있을 것이란
작은 희망이 있었다. 아니 바랐다.
난 정말 성실히 상담에 임했다.
정말 정말 하기 싫은 10프로를 제외하곤, 솔직했던 거 같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까지 다 털어놓은 적은 없었던 거 같다.
뭐 그래 봤자 별 거 아니지만.
상담 중 제일 힘들었던 건. 내면아이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이나 경험이 없어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상담프로를 봐도, 결국 문제의 원인은 어린 시절로 귀결된다.
나도 상담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봤다.
무방비했던 존재.
우습게도, 상담 이후 형제들이 더 싫어졌다.
심리상담은 마치 최면치료 같은 느낌이 있다.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본다.
그럼 예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물론 몰랐던 장면이 보이는 건 아니다.
다만 어른의 내가 그 시절을 관찰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내가 형들의 입장이었다면, 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 다 대학생이었는데, 난 아무것도 그들에게서 배운 게 없다.
한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 밖에 몰랐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런 면에선, 어떤 의문이 풀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똑같았던 것이다.
(내 생각에 너무 귀하게 키웠다)
심리상담가는 내가 '파괴적 자기실현적 예언' 증세라 했다.
(찾아보니 자기파괴적 예언이 맞다)
솔직히 정확한 문구가 아닐 수 있다. 기억이 그렇다.
이게 뭐냐면, 두 학급이 있다.
한 학급은 방치하고 다른 학급은 학기말에 반드시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계속 주입했을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하는 실험이다.
당연히 후자다.
이게 선험적 예언이다.
난? 반대다.
학기가 시작될 때, 난 학기말에 반드시 성적이 떨어질 거라 믿는 사람이란 얘기다.
심리상담가의 이 판단이 맞는 지 모르겠다.
다만, 난 한번도 낙관적인 태도를 취한 적은 없다.
뭔가 잘 될 거라 말한 적은 있어도, 그 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은 없다.
나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나의 기억 속에선, 누구도 나에게 잘 될 거라고 확신을 준 적이 없다.
(아주 유명한 방송작가 선배님이 내가 크게 성공할 거라 말씀 하신 적이 있다. 하지만 난 믿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하는 짓이 바보처럼 보였나? 그래서 취학 전 한글도 안 가르쳤나?
방치, 방임이 더 맞을 거 같다.
그래서 문득, 행복의 모습을 떠올려 봤다.
미래에 내가 행복한 모습은 어떤 장면일까?
떠오르지 않았다.
굳이 떠올리면, 어디서 본 장면의 클리세였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곳에 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 살고.
다 영화나 광고 속 장면이다.
난 내가 누군지 모른다.
뭘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누군지, 뭘 좋아하는지 외면한다.
겁이 나서, 부끄러워서.
미래는 고사하고
난 행복했다면, 이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