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탈을 쓴 두려움
난 어려서부터 남에게 뭔가를 잘 준다.
물론 대단한 건 없다.
하지만 넘쳐서, 남아서 주는 건 아니었다.
어떨 땐, 꽤 괜찮은 걸 처음보는 사람에게 주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고가의 만년필을 내가 쓰지 않고 전교 1등에게 주는 경우랄까?
왜 그랬을까?
왜 평생 그 감정을 가진 걸까?
여기서 예전 동화가 생각난다.
아픈 어머니를 둔 농부가 있다.
약을 찾으려 산을 헤매다 커다란 산삼을 발견한다.
산삼을 캐 온 농부는 어머니와 고민을 한다.
이 귀한 걸 하찮은 자신들이 먹는 게 옳을까?
결국 농부는 산삼을 들고 임금을 찾아간다.
임금은 농부의 충성심에 감복해 큰 상을 내린다.
그 후 어머니와 농부는 행복하게 살았다.
결국 엄마의 병은 영양실조다.
잘 먹으니 나은 것이다.
아님 죽었는데, 감추는 걸지도 모른다.
농부모자는 왜 산삼을 먹지 않았을까?
병이 나을 수도 있는데.
그토록 소망했던 일인데, 정작 눈 앞에 오니 포기한다.
무엇이 엄마의 목숨보다 소중했던 걸까?
정말 천륜을 넘어설 만큼 임금을 존경해서 였을까?
아니다.
어차피 빼앗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먼저 주는 게 낫다.
그럼 그건 내 의지고 난 덜 비참하다.
설령 빼앗기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다면
내 몸을 앗아갈 것이다.
전교 꼴찌가 파카 만년필을 쓴다면,
선생이 와서 계속 면박을 줬을 것이다.
친구들은 놀릴 것이다.
결국 견딜 수 없어, 만년필을 쓸 수 없게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타인들이 원하는 이에게 줘버리는 게 낫다.
이런 더러운 감정을 갖고 평생을 살았다.
마치 양보와 배려가 몸에 밴 사람처럼.
내 인생을 송두리째 남에게 주며 살았다.
빼앗길까봐 줘 버렸다.
빈 손으로 지나온 날을 되돌아 본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