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
27살 청년이 출근했다.
내가 3일 먼저 들어왔으니, 거의 동기나 다름없다.
그는 일을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었다.
대번에 사람들이 그를 알아봤다.
물론 날 보고 일을 더럽고 못한다며 혀를 찼을 것이다.
아마 언제 나가나 내기를 했을 수도 있다.
참고로 난 꼭 한 달을 채울 생각이다.
가능하면 일 년을 버텨 퇴직금을 받고 싶다.
청년은 워낙 말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에도 혼자 있고, 밥도 혼자 먹었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좀 나와 결이 달랐다.
난 낯설어서 그렇지만, 청년은 원래 그런 류 같았다.
내가 신기했던 건, 자판기였다.
내가 근무한 동안,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은 사람은 그 청년이 유일했다.
음료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제일 싼 게 오백 원, 보통 천 원이었다.
청년은 공짜로 먹을 수 있는 물 대신, 돈을 내고 음료수를 마셨다.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도 청년은 말 한마디 내게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묵묵히 나의 일을 도와주곤 했다.
오늘은 오랫동안 망설이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꼭 알고 싶은 게 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해 봤어요?'
'네.'
'편의점 알바랑 여기 공장이랑 어때요? 어디가 더 편해요?'
'고등학교 때 해봤는데, 편의점 알바가 편하죠. 근데 돈을 안 줘요. 최저시급보다 낮게 주는 곳도 있어요.'
'강남은 시급 만원이라고 하던데. 4대 보험도 되고'
'강남은 무지 바빠요. 그리고 편의점은 이상한 사람이 되게 많이 와요.'
'무뢰한 사람이요?'
'네. 걸인도 오고요.'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 40살인 여자가 편의점 알바를 하는 내용을 봤다.
여자는 월 이백도 저축한다 하고, 서울에 자가도 마련했다고 방송했다.
근데 궁금했던 건, 왜 도봉구에 살면서 강남까지 가서 편의점 알바를 할까였다.
청년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급여를 안 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
나는 다시 청년에게 물었다. 대충 감이 왔을 것이다.
'여긴 어때요?'
'모르겠어요.'
'모른다는 건 부정적인 의미 아닌가요?'
'.......'
청년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난 청년의 이력을 모른다.
학력은 어떻게 되는지, 군대는 갔다 왔는지, 자격증은 있는지.
하지만 그가 갈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알겠다.
늙은 내가 갈 곳이 없는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제 27살인 키 180센티의 건장한 남자가 일할 곳이 여기라는 게 놀랍고 실망스러웠다.
이 공장은 개인의 커리어를 쌓거나 자아를 개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난 알바 사이트를 보고 이 공장에 들어왔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에겐 정상적인 일자리는 없었단 걸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공장엔 30살 이전의 남자 직원이 4명이다. 총 남자 직원의 반이다.
그들이 계속 이 공장을 다닌다면, 나중에 무엇이 될까?
아마 내가 될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저학력 청년의 현주소다.
그래서 대기업 노조에서 악착같이 자식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 하는 거 같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란 제목의 영화가 있다.
난 이렇게 바꾸고 싶다.
노인만이 아니라, 청년을 위한 나라도 없다.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한 나라로 가는 걸까?
추신: 이후 알게 된 사실은 그는 지방의 대학을 중퇴했다고 한다. 조리학과라 했는데, 비젼도 없고 부모님의 경제 사정이 악화돼 돈을 벌어야 했다고 한다. 이 직장에 오기 전에 가습기 회사에 3년간 근무했는데, 올해 도산했다고 한다. 퇴직금으로 친구가 소개해준 미국 주식을 샀는데, -98프로가 됐다며 계좌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