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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Mar 12. 2023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모두 그렇진 않다.

부끄럽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나란 존재가 세상에 안 보이면 좋겠다.

존재하지만, 투명해서 세상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동정도 비난도 원치 않는다.


모두 나와 같은 삶은 아니다.

나에겐 형이 둘 있다.

큰형은 건축과를 나와 설계회사에 취직했다.

그 후 몇 번의 이직이 있었지만, 평생 열심히 일해 이젠 다주택자다.

연금도 편안한 노후를 보장할 정도는 된다.

작은형은 지방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한다.

넉넉하진 않지만, 자기 가족을 건사할 정도는 된다.


나는..... 나만 이렇게 산다.

그러니 나의 고통과 슬픔은 한정적이고 국소적이다.

나의 문제다.

나의 아픔이다. 

당연히 이해를 구할 수 없다.

그즈음 만난 글이 '아이슬란드가 아니었으면'이었다. 

난 위로받았다. 

아무것도 바뀐 건 없지만, 마치 진통제를 먹은 듯했다. 


'나 말고 또 있구나.'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지?'


아내는 나의 글이 너무 우울하다고 뭐라 한다.

내가 이런 감정 말고 타인에게 무엇을 진심으로 줄 수 있을까?

내가 말하는 희망에 과연 무게가 있을까?

아마 깃털보다 가벼울 것이다.


평생 글을 쓴다고 방구석에 앉아 영화 보고 드라마 보고 대본을 봤다.

분석하고 다시 보는 것의 연속이었다. 3막을 나누고, 메인플롯과 서브플롯을 찾고.

물론  글도 썼다.

공모가 다가오면, 습관처럼 작품을 썼다.

새해가 되면, 또 마음을 다잡고 글을 썼다.

하지만 그 글은, 다른 영화의 흉내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니 새로움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비슷하지도 않았다.

채택되거나, 당설 될 리가 없었다.

그럼 실망하고. 술 먹고.

20년을 반복했다.


때때로 이력서를 내서 일을 땄다.

겨우 입에 풀칠할 돈을 받으면서도 좋았다.

'기회가 있을 거야. 나이 들어 풀린 작가도 있잖아. 없으면 내가 그 사람이 되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변명이었다.


50이 넘어, 현타가 왔다. 

늦어도 한 참 늦었다. 

그렇게 다른 삶을 살려했는데,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위성처럼 멀리 떨어진 채 빙빙 돌고 있다. 

어떤 별도 우주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빅뱅이 일어나 소멸되기 전 까진.


사람도, 인생도 그렇다. 

현실의 삶에 연연할수록, 그런 삶을 지향할수록 죽음 후에 초라해진다.

요 근래, 많은 장면을 목격한다. 

50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들이 버젓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

이런 일이 가능할지 상상도 못 했다. 

다 국가와 국민의 오늘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란 말을 갖다 붙인다.

내가 그렇게 살았다. 오늘만, 지금만. 

삶은, 나를 기억하는 이들로 인해 내가 남긴 흔적으로 계속된다.


젊었을 때, 깨닫지 못했을까?

편안함에 익숙해서 일 것이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삶은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이 사회의 룰이다.

왜 몰랐을까?

알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작가가 글을 포기한 나이도 나보다 3살어렸다.

노후를 위해 뭘 해야 할까?

뭔가를 해낼 힘이 소진된 거 같다.

지금은 새벽 2시 반이다. 

작은 희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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