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2일
오늘은 화랑미술제에 다녀왔다. 해마다 가고 있지만 언제나 이곳은 사람과 그림, 그리고 은근한 경쟁심이 뒤섞여 공기가 조금은 뜨거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한 박자 느리고 여유롭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주말인데도 통로는 널찍했고, 부스는 여유로웠고, 예전의 북적거림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코엑스 C전시장과 D전시장을 돌다 보니 어딘가 전시된 그림들이 달라진 것 같았는데 중간쯤 보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항상 보던 블루칩 작품들을 출품하던 익숙한 이름의 큰 화랑들이 잘 보이지 않고 대신 처음 보는 갤러리에서 모르는 작가들의 작품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낯설고 새롭다는 건 항상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오늘은 그 낯섦이 묘하게 ‘시장’의 온도를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작품 가까이에 가서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어댔어야 하는데 오늘은 잰걸음으로 갤러리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것으로 충분했고 시선을 사로잡는 내 취향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작품들이 덜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다양하고, 더 솔직하고, 더 실험적인 작품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다양함이 ‘구매 욕구’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 간극이 느껴졌을 뿐이다.
문득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이 많은 그림들이 다 팔릴까?”
그리고 거의 동시에, 더 쓸데없지만 훨씬 현실적인 생각이 이어졌다.
“아, 내가 가진 작품들도 팔아야 하는데…”
사실 이 두 문장은 같은 문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남의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가, 결국 ‘내 시장’을 돌아보게 된다. 요즘은 그림이 좋아서만 팔리지는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작품이 좋아야 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그 위에 ‘왜 이 그림이어야 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 작가여야 하는지’까지 얹혀야 비로소 선택을 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어쩌면 오늘의 한가로움은 단순히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라, 선택이 더 어려워진 시대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은 더 신중해졌고, 파는 사람은 더 많은 설명을 해야 하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작품은 조용히 서 있다. 그리고 예술 작품을 구매하는 것은 쓰고 버릴 물건 사는 것도 아니지만 주식처럼 재판매를 하여 차익을 올리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괜히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시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결국 팔리는 그림도, 남는 그림도, 계속 그리는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 오늘의 한가로운 미술제는 그래서 조금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생각을 남겼다. 조용한 공간에서, 각자의 속도로 흘러가는 수많은 그림들. 그리고 그 사이를 걷다가, 결국 내 그림 생각으로 돌아오게 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