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늘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할까

2026년 4월 24일

by HWP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이 별로 없다. 아니, 오히려 즐긴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회사를 옮겨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고, 새롭게 주어지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는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브리지 게임을 배웠으며, 마작을 익혔다. 언어도 전공인 프랑스어와 영어 외에 일본어와 스페인어를 독학으로 시작했고, 한국어교원자격증 시험도 준비했다.


그렇게 나는 늘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또 다른 무언가를 기웃거린다.


최근 들어서 하나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끈기가 부족하며 금방 싫증을 내는 나의 이런 성격이 문제가 아닐까 돌아보고 있다. 새로운 자극을 즐기고 익숙해져 버리거나 원하는 결과에 다다르지 못하면 포기하고 중단해 버리는 나의 못돼 먹은 버릇 때문에 지금 내 마음 한쪽에 작은 열등감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할 줄 아는 것은 많은데 막상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이해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낯설던 것이 연결되고,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고, 전체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그 순간, 그 짧은 순간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깊어지는 과정은 느리고 반복적이다. 같은 실수를 여러 번 겪어야 하고, 눈에 띄는 변화 없이 시간을 쌓아야 한다. 그 구간에서 나는 자주 이탈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보면 막연히 부럽기도 하고 지금까지 나의 행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를 오래 붙잡고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들은 그 시간이 쌓여 지금의 깊이를 이뤄낼 수 있었던 데 반해 늘 중간 어딘가에서 방향을 바꿔온 나는 진짜 내 것을 만들어 놓지 못한 것 같아서 작아지기도 한다.


나는 정말 잘못된 방향으로 온 걸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쌓아가고 있는 걸까.


돌이켜보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없었다. 한때 배우던 것들이 다른 순간에 다시 이어지기도 했고,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경험들이 의외의 지점에서 연결되기도 했다. 깊이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름의 넓이와 결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질문을 조금 바꿔보려고 한다. “왜 끝까지 못 갔을까”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이 남았을까”로...


결국 나를 만든 것은 하나의 거대한 성취가 아니라, 내가 거쳐 온 수많은 '이해의 순간들'이었다. 비록 남들처럼 수직으로 깊게 파 내려간 단단한 기둥은 없을지라도, 나는 수많은 지식의 섬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연결하며 드넓은 영토를 일구어 왔다. 누군가는 이를 '중도 포기'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이를 '충분한 탐험'이라 부르기로 했다.


완성되지 않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근사한 모자이크가 되듯, 나의 멈춤과 이탈 역시 내 삶이라는 커다란 그림의 일부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이제는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을 탓하기보다, 내 안에 쌓인 이 다채로운 색깔들을 즐기며 살아가려 한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기웃거릴 것이고, 또다시 '처음 이해하는 순간'의 전율을 쫓아 길을 나설 것이다. 끝까지 가지 못하면 좀 어떤가.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풍경이 이미 내 안에 남았는데.

나는 오늘도 기꺼이, 즐겁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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