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유럽 귀족들의 게임
브리지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16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다양한 카드 게임들로부터 발전된 것으로 여겨지고 여러 나라가 그 원조를 주장한다.
16세기부터 프랑스에서는 '트리옹프 (Triomphe)' 게임이 인기가 있었는데 트럼프 카드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브리지의 조상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이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역시 팀 기반으로 진행되며 트릭을 겨루는 방식이어서 브리지와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비스티(Whist)’라는 게임도 브리지의 뿌리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게임은 17세기 영국으로 전해졌고 귀족사회에서 유행하던 '휘스트 (Whist)'이라는 카드 게임으로 발전하였는데, 2명씩 2팀, 즉 4명이 52장의 카드를 13장씩 나눠 갖고 파트너십을 통해 가능한 많은 트릭을 이기면 되는 게임으로 지금은 브리지와 비슷한 형식으로 요즘도 브리지를 가르칠 때 휘스트부터 시작하기도 하는데 비딩을 통해 트럼프 슈트를 결정하거나 계약 (contract)을 찾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점수를 내는 방식도 훨씬 단순했다.
18세기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더욱 유행하며 발전하여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지적인 경기로 자리 잡았고 당시 사람들은 이 게임을 단순한 오락을 넘어, 대화와 사교의 중요한 수단으로 즐겼으며 이러한 전통을 물려받아, 다양한 지역에서 변화하며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 외에 러시아에도 트럼프 카드를 가지고 하는 트릭 기반의 카드게임이 19세기 귀족들을 중심으로 유행했었는데 브리지보다는 간단한 형태였고 플레이어의 숫자가 다른 경우들이 있었다고 한다.
'휘스트(Whist)'가 '브리지(Bridge)'로 발전한 과정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서히 이루어지는데 트릭 기반의 간단한 카드 게임에서 점점 더 복잡한 전략과 규칙을 추가하면서 몇 단계를 거쳐 현대의 브리지로 진화하게 된다.
2명이 페어를 이루어 2 페어씩, 네 명이 한 테이블을 이루어 트럼프 카드와 트릭을 따내는 방식의 게임으로 규칙은 비교적 간단했지만, 그 안에서 전략적인 플레이가 중요하다. 특히 팀원 간의 협력과 상대방의 카드 패턴을 예측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초기 휘스트는 계약 과정 없이, 각 팀이 가능한 많은 트릭을 따면 이기는 단순한 구조였다.
19세기 후반, '더미 휘스트(Dummy Whist)'가 등장하면서 브리지로의 첫 번째 발전이 이루어진다. 더미 휘스트에서 한쪽 페어의 한 플레이어의 패가 공개되는 "더미"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이는 브리지로 이어지는 중요한 변화이다. 공개된 패로 인해 게임은 더욱 전략적이 되고, 상대방의 패를 추측하는 것뿐 아니라 협력과 예측을 더 정교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더미 시스템은 브리지에서 오늘날까지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19세기말에는 러시아에서 '브리지 위스트(Bridge Whist)'라는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미니 브리지(Mini Bridge)'라고도 하는데 이 게임은 더미 휘스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입찰(Bidding)과 트럼프 선언 개념을 도입했다. 한 팀이 먼저 트럼프 슈트를 결정하고(트럼프 슈트는 특정 카드 무늬가 더 높은 우선순위를 갖는 것), 더 많은 트릭을 따내기 위한 목표를 설정한 후, 게임을 진행한다. 이 시스템은 현대 브리지의 입찰 과정과 유사한 구조로, 전략적 요소가 더 강화되었다.
'옥션 브리지(Auction Bridge)'는 1904년경 등장한 또 다른 중요한 변형으로, '입찰(Auction)'의 개념이 보다 발전하게 된다. 플레이어들이 각자 자신이 따낼 수 있을 것 같은 트릭 수에 대해 순서대로 입찰을 하며, 가장 높은 입찰을 한 플레이어가 트럼프 슈트를 결정하고 목표 트릭 수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게임에 대한 예측과 위험 감수 요소를 추가하여, 단순히 트릭을 많이 따내는 것 이상의 전략적 깊이를 더했다. 입찰에 따라 위험을 감수할지, 안전하게 갈지 선택해야 하므로 브리지가 단순한 운의 게임을 넘어 두뇌 게임으로 발전하게 된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게임을 '플라퐁(Plafond)'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콘트랙트 브리지(Contract Bridge)'는 1925년 미국의 사업가 해럴드 밴더빌트(Harold Vanderbilt)에 의해 도입된 게임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브리지의 규칙을 대부분 확립한 게임이다. 그는 크루즈 여행 중 옥션 브리지를 변형한 콘트랙트 브리지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주요 변화는 아래와 같다:
계약(Contract)의 중요성: 플레이어는 입찰을 통해 자신이 따내야 할 트릭 수를 계약하고 목표 트릭 수를 달성하면 보너스가 달성하지 못하면 페널티가 부여된다.
점수표: 트릭 수를 넘거나 미달하는 것에 따라 복잡한 규칙에 따라 점수가 부여되며, 이는 승리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입찰 과정의 발전: 옥션 브리지에서의 입찰 개념이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하여, 팀은 서로 소통하며 트럼프 슈트를 결정하고 계약을 세우는 과정을 통해 전략적으로 게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Vulnerability: 이는 브리지에서 위험 관리와 전략을 중요시하는 요소가 되었으며, 게임에 긴장감을 더하게 된다.
컨트랙트 브리지의 등장은 게임의 전략성을 크게 강화시켰다. 이전 버전인 옥션 브리지(Auction Bridge)에서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전략이 단순했다면, 컨트랙트 브리지는 각 판에서 '계약'을 걸고 그 계약을 완수해야 점수를 얻는다는 독특한 룰을 추가했다. 이로 인해 브리지는 단순한 카드놀이에서 벗어나, 전략적 사고와 협동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새로운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인기를 얻으며 브리지의 '황금기'를 열었다.
특히,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 정치인, 그리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브리지를 즐겼다. 이 시기에 브리지는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사교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카드 게임은 커피 테이블과 저녁 파티의 중심이 되었고, 브리지를 할 줄 안다는 것은 교양과 품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플라퐁과 옥션브리지로부터 발전된 1925년 이후 콘트랙트 브리지는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1930년대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로 거의 자리 잡게 된다. 20세기 중반부터는 브리지 대회와 클럽들이 세계 곳곳에서 성행하기 시작했다. 국제 브리지 연맹(WBF)은 1958년 창립되었으며, 브리지를 공식적으로 규제하고 대회를 개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993년 70명의 멤버가 한국 브리지협회 (Korea Bridge Association)을 하였고 다음 해에 WBF에 가입했다. 세계 각국에서는 브리지 대회가 열리며, 이들 중 일부는 국제 스포츠 대회처럼 텔레비전으로 중계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아시안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처럼 오늘날 브리지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다양한 수준에서 즐겨지는 경쟁적인 스포츠로 발전했다. 온라인 브리지 플랫폼이나 게임 같은 애플리케이션이 생기면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시공간의 제약 없이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브리지의 매력은 더욱 확장되었다.
비록 미국에서의 황금기만큼은 아니지만 브리지는 역사와 함께 계속 진화해 온 게임이다. 그 과정에서 게임은 새로운 규칙과 형식을 통해 진화했지만, 여전히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협동을 중심에 둔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브리지를 공교육에서 가르치고 있고 인구가 30만 명밖에 안 되는 아이슬란드에서는 1991년 월드 챔피언쉽 우승팀이 나오기도 했다. 브라질, 터키, 이스라엘, 노르웨이 등도 브리지의 온상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프랑스는 1997년 월드 챔피언쉽 우승팀을, 이탈리아는 세계 최고의 팀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나이, 종교, 인종,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즐기는 몇 안 되는 게임임에 틀림없다. 이 독특한 카드 게임은 그 역사가 말해주듯 단순한 놀이를 넘어선,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위한 다리(Bridge)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