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하다
며칠 전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너무 깔끔하다!” 방 두 칸에 큰 가구랄건 전신거울, 침대, 러그, 책상, 행거가 끝인 우리 집이다. 나는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행하는 것도 좋아하고, 하고 나서 깔끔한 나의 집에서 내가 생활하는 것도 좋아한다. 본가에 살 떄는 나만 사는게 아니다보니 완전 내 식대로 치우지는 못했었고 지금은 내 성에 찰만큼 깔끔히 집을 유지한다. 그냥 좋아하면 참 좋겠지만 어그러지는 건 싫은 강박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고집도 있고! 내가 가장 최악으로 생각하면서도 가장 좋은 강박은 화장실에 샴푸나 여러 물품을 찬장 안에 정리해 놓는 점이다. 사용할 때마다 물기를 다 닦아서 다시 넣고 배열에 맞춰서 놓아둔다. 나에게는 하나도 귀찮지않고 나를 기분좋게 만드는 일이지만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그 누군가가 “어우 질려” 할 수 있는 강박이란 걸 알고 있다. 강박과 깔끔, 그런 나의 집을 유지하고 유지한 채로 생활하는게 내 목표다. 나중에 누군가와 함께 살 떄는 조금 완화되고 바뀌어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런 우리 집에 내가 초대하지 않았는데 방문하는 손님이 있다. 하루살이, 초파리다. 파리는 잘 들어오지 않고 아직 여름을 겪지 않아 모기가 얼마나 오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저 친구들이 내가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줌 모임을 하고 있을 때 포착된다. 냄새 나는 곳을 찾는지 나를 쭈욱 빙 돌면서 탐색하는데 그럴 때 나는 참지 않는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는 안 될 손님으로 인식해 버리는 것이다. 무언가를 묻혔을지 모르고 어디서 온지 모르는 너희들은 안돼! 우리집에 올 수 없어!
죄책감 없이 살생을 한다. 무시무시한 말이지만 나에게도 유쾌하지는 않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와! 나를 해치려고 그러지! 나 혼자 모노드라마에서 독백하듯 외치며 초파리나 하루살이를 잡는다. 내 손으로 잠깐 누르기만 해도 닿고 나면 그들은 죽는다.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져 버린다. 곤충이나 동물을 사랑하고 최대한 집에 보내주고 싶은 나지만 그들을 우리 집에 들일 수 없다. 너무 단호하게 말이다.
오늘 처음으로 어쩌면 그들이 나에게 무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거나 이야기 하고 싶은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화장실에서 내 눈으로 돌진하는 초파리를 손으로 잡았다. 안잡혀서 박수 자세로 그들을 따라다녔다. “내 집에서는 이야기 하지마!” 바깥에서 길을 지나다 내 앞에 쏟아지는 그들을 보면 죽이기 보다는 그냥 손을 휙 휘젓고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는 안된다. 이건 집에 대한 소중함 보다도 강박을 가진 내가 더 강력한 힘을 미치는 것 같다. 아무것도 날아다니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집을 바라본다. 돌아보며 다시 한 번 그들이 나에게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치만 내 앞으로 오면 난 또.
어제 소독을 했다. 아파트 전체로 하는 소독이었다. 난 그저 그들이 나의 집에 오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