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법
실컷 놀다가 현생으로 돌아왔다. 꿈만 같던 제주에서의 기억은 생각만해도 나를 차오르게 했다. 여행 이틀차에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노트북을 열고 하나를 완성해 내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에 절여졌다. 일을 할 수 없는 할머니댁에서 마침내 6월29일 마감인 일들을 떠올렸을 때, 아득해지는 정신을 미처 다 잡지도 못했다. 그렇게 잤지만 아직도 피곤한데 큰일났다. 충전이 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방전된 상태였다. 그래도 오늘 해야하니 어쩌겠어 어금니를 꽉 깨물고 하기 싫음을 질질 끌고 집까지 도착했다. 아직 씻지 않은 몸이 더 찝찝하게 느껴져 짜증이 날 것 같았지만 본체에 전원 버튼을 누르며 모니터 불빛에 내 마음도 조금은 밝혀졌다. 하나씩 해치우면 괜찮을거야, 혼자 주문을 걸며 창을 열고 일단 씻었다. 새로 다운 받아야 하는 상황도 석연치 않았지만 어쩐지 평온해졌다. 좋아하는 영상을 앞에 틀어놓고 아까보다 가볍게 묶여진 모래 주머니를 의자 다리에 걸쳤다. 오, 더 가볍다. 할 일을 가늠하기 위해 우선 하나씩 창을 다 켰다. 네 가지 정도의 할 일이 내 앞에 나타났다. 너를 다 해치워주마! 너희들! 지금은 열시반, 오늘 한시쯤에 자더라도 다 해보자는 결심이 굳었다. 먼저 내가 쓴 글을 자꾸만 검열하며 메일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생각난 문자 내용도 완성했다. 내일 보낼 수 있도록 나의 카톡에 보내놓고 3가지나 있는 할 일을 켰다. 하나씩 해나가다 보니 졸음에 졸, 아니 지읒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게 달아났다. 나는 더이상 잠 와서 일 하기 싫고 방전된 사람이 아니었다. 집 밖에서의 마음과 다르다. 충전 게이지가 올라감을 느끼며 3가지의 할 일을 마쳤다! 쾌재를 부르며 시간을 보니 지금은 열두시! 이제 강의 원고랑 카드만 쓰고 메일 예약 걸면 끝이다! 작년 여름에 적었던 기사 원고를 참고하며 하나씩 원고를 작성해 나갔다. 이렇게 나만의 무언가를 구성하는 길은 다른 감정, 환경이 보이지 않을만큼 재미난다. 나의 힘을 온전히 느끼며 서론, 본론, 결론까지 완성했다. 강사 카드와 모든 서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다른 곳에 보내놓고 예약을 걸자 새벽 세시 반이 된 하루가 보였다. 눈꺼풀은 조금 무거운데 뿌듯하고 정신은 맑군. 이래놓고 누우면 바로 잘 것 같다. 아 오늘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 읽고 잘랬는데. 그거 읽고 자면 동이 틀지도 모르고 그럼 내일의 내가 힘들어 할테니, 출장 가야하니 이제 자자 하며 잠이 들었다. 충전과 방전을 왔다갔다 하던 기나긴 하루가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