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두고온 날
어? 비 온다. 영재 학원을 마치고 피아노로 가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비가 도파민이 되었다. 피아노 갔다가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엄마가 데리러 올 생각에 신나게 피아노를 치고 공중전화 박스로 향했다. 동전은 없다. 어떻게 전화하냐고? 콜렉트콜! #1541을 누르고 엄마 휴대전화 번호를 하나 하나 꾹꾹 누른다. 난 공중전화 번호판 느낌이 좋더라. 익숙한 음악과 안내 음성을 들으며 기다린다. 엄마 목소리가 나오기를. "어" 아! 드디어! "엄마 갑자기 비가 와요" "어~ 우산 안가져갔제? 피아노가!?" 높아진 엄마 말에 "응!" 나도 커다랗게 대답하고는 끊는다. 무료 통화가 끝났다. 후두둑 내리는 비는 우산 없는 내 머리도, 내 옷도, 나의 기쁨도 적셔준다. 피아노 학원 계단 아래에서 습한 공기를 마시며 엄마를 기다린다. 비가 좋은건지, 아니다. 우산 없는게 좋은 일인건지, 그것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엄마가 데리러 오는게 그렇게나 좋더라! 아침부터 비 안오는 날 소소하게 누리는 기쁨이자 재미다. 집에 계시던 엄마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20분은 떨어져 있던 옛날 집은 아파트 버스가 있어서 동네를 돌면서 데려다줄만큼 초등학생이 걸어가기 애매했다. 여시같은 나는 결혼 하자마자 차 끌고 다니시던 엄마를 종종 호출해 집으로 갔는데 그렇게 기다리던 순간들이 내 초등학교 시절의 한 부분이었다. 늦게 오면 그동안 지루하고 엄마가 도대체 뭐하나 싶어서 화도 나고 기다리기 싫어서 짜증도 나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그러면서도 엄마 차를 타고 가는게 좋다 한다. 비 오는 날은 좋은 구실이 되어 더욱 더 우산을 잊게 만든다. 전화를 하게 만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