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잃은채 입 벌리는 사람)ㅇㅇㅇ

첫 걸음으로 충분했던 날

by 지니샘

고민하다 처음이라는 말에 안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느끼고 씁쓸했다. 어쩌면 자만이다. 찾아보면 내가 처음일게 얼마나 많은데. 우선 오늘 내가 한 것들 중에서 내가 한 처음은 없었다.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다 처음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했다. 집착하지 말자하고 사람들을 다시 그렸다. 없는데? 없어, 쓸 얘기가 없다고. 느낀게 없다는 나였다. 그러다 생각났다. 어!


비 온 땅을 피해 자동차 아래로 들어가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듯 나른하게 누워있던 고양이. 길가에서 자유로이 넘나드는 걸 보니 길고양이 같았다. 길에서 태어나 그루밍을 받았을 아주 어린 새끼를 떠올리며 그의 가족이자 보호자이자 스승이자 선생님인 엄마 고양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새끼의 처음을 보았거나 도와준 엄마의 마음은 그 걸음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한 발의 움직임으로 고단한 눈을 잠시 감았을지 모른다. 엄청난 박수와 칭찬을 해주고 싶었겠지. 고양이 언어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요즘 나는 확실히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아이들을 보고싶은 마음은 강렬하지만 우리가 함께 숨쉬는 공기가 만들어내는 정서나 분위기, 숨은 느낄 수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음이라기 보다는 정서가 죽어있다. 감각하지 못한채로 킁킁 거리기만 하는 내 코가 외로움을 탄다. 이전의 경험을 불러와 맡아보려 해도, 없다. 현실은 어른이 가득한 나의 세계다. 살아있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끄집어올려서라도 그 날의, 그 때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손에 휴지를 감는 아이가 미세하게 떨린다.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고 바라보는데 내 눈에만 포착되는 작은 떨림 속 첫 시작이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와 아이에게서 크게 요동치는지 알고 있다. “손에 휴지 너무 잘 감는데?” 화장실이 울리던 말던 큰 목소리로 뜨겁게 손이 포개진 박수로 나는 이야기 한다.


“너의 7살을 함께해서 선생님은 너무나도 큰 영광이었어”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하나밖에 없는 7살 세계에 발을 들여 그의 한 부분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벅찰 수 밖에 없다. ㅇㅇ유치원 ㅇㅇ반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갔지만 몇 글자 보다 배로 큰 의미로 퍼져 스며들어 갔다.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서로에게 0.01%만큼을 차지한 우리의 시간과 마음이 감사하고 감동스럽다. 감격스럽다. 그들이 이루는 무언가의 처음을 나와 함께 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나를 충분하게 하는 그들이 또 그리워지는 밤이다. 어른의 세계에서 잘만 놀고 먹는 나를 충만한 아이들의 세계로 데려가고 싶어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날-라-리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