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

ㄱㅎ

by 지니샘

꽤나 모범적인 나지만 가끔은 반항적이고 싶어진다. 교훈을 제목으로 두고 교훈 같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렇게 하면 좋다 나쁘다로 끝나는 교훈은 식상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이야기의 끝이 그래도 교훈적일지, 악랄할지는 시작해 보기로 하자.


여섯시에 눈을 떴다. 두시반에 잔 것 치고는 눈이 바로 떠졌다. 좀 더 자고 싶어서 휴대폰을 눈 앞에 두고 누워있었다. 괜히 불안해서 깨보니 6시9분이다. 이럴거면 일어나자. 7시5분 버스를 타야한다. 타지 않으면 택시를 타야하고 그럼 돈이 배로 많이 든다. 탈 수 있는 버스라면 타줘야지. 머리를 감고 후두둑 떨어지는 앞쪽 속눈썹을 바라보며 잠시 들리지 않게 얼마전 만났던 아주머니를 욕했다. 이렇게 잘 떨어지는 사람 없다더니, 여기 있어요. 나. 리터치를 받을 시간이 있나 계산하다보니 어느새 옷을 입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내가 있었다. 요즘 머리가 말을 안듣고 너무 거지존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고데기가 조금은 먹어야 할텐데 조금이라도 마르지. 머리카락에게 주문을 걸며 생각보다는 말을 잘 들어주는 머리카락에 감사했다. 45분, 시간이 남았다. 안하려고 했던 화장까지 마치니 나갈 시간이다. 7시가 넘다니. 부리나케 나왔는데 비가 오는 걸 보고 다시 들어가 우산을 가져 왔다. 비가 오는 날 멀리 나가는 외출이란 쉽지 않은데, 오늘 동선을 그리며 실내가 더 많다는 사실에 또 감사했다. 대중교통은 오히려 비를 덜 맞고 덜 움직이기도 한다. 지하철이 있잖아 서울은! 여유있게 버스에 탑승하고 잠시 손을 주춤거렸다. 지금은 7분, 가는 시간은 16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나는 24분 기차다. 탈 수 있을까? 27분 기차가 있는걸 봤던터라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27분 기차를 예매했다. 빨리 도착하면 24분 타고 27분 취소하면 되지. 내 속마음이 절대 안들리고 있다는 걸 증명하듯 버스는 느릿하게 움직였다. 여기 이 길을 원래 이렇게 갔던가? 달달 떨릴만큼 초조하지는 않지만 어떤걸 취소하냐 마냐 하고 있는 나에 비해 버스는 너무 여유있었고 신호는 너무나도 길었다. 즐거운 마음이 사라지고 긴장되는 마음은 없었지만 ‘아 이제 돈이 많이 쓰이겠구나’ 하고 끓어오르려는 화에 물을 부으며 자꾸만 식히기 바빴다. 화를 내거나 분노해도 달라질게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침착하게 버스에서 엉덩이를 떨어뜨리지 못한채 24분 기차를 취소했다. 시각은 23분이었다. 잠시 지금 아직 거리가 더 남았는데 27분 기차는 탈 수 있으려나? 근데 이거 놓치면 약속한 시간까지는 못가는데, 다른 기차는 없나? 온갖 생각을 하며 반환하기에 손을 올렸다. srt를 알아보고 홈페이지도 들어가보고 ktx 용산이고 서울을 모두 찾아보았지만 이제부터는 늦은 시간이다. 내가 빨리 뛰어가면 27분을 잡을 수 있으려나, 에스컬레이터 2개를 넘고 플랫폼을 지나 계단을 도다다 올라갈 수 있나? 이상하게 덜그럭 거리며 아픈 발과 말 안듣는 신발이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렇지? 늦는게 오늘 내 인생이지? ‘아이고’ 하면서 26분에 역에 내렸다. 27분 기차표 반환하기를 누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여유롭게 47분 기차를 타자와 다른 거 없나? 수서역으로 가는거? 하는 양극단의 내가 동시에 나와서 설쳤다. 다른 기차는 없었다. 내가 설쳐봐야다. 여유보다는 패배감 가득하게 플랫폼을 지났다. 27분 기차가 문이 닫힌채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겨우 다 올랐을 때 기차는 출발했는데 자유석 1장이라는 문구가 내 마음을 울렸다. 힘이 없어서 기둥에 기대어 늦겠다는 연락을 하고 나는 미안해 했다. 내가 택시를 탔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고 나는 24분이건 27분이건 탈 수 있었을까. 오늘 기차를 몇 개를 예매한걸까. 또 몇 개를 취소했나. 웃음도 울음도 나오지 않는 기분에 심취해 있을 때 기차가 도착했다. 또 타고 나니 진정되고 안정되는 마음이 웃기다. 가자마자 기차 몇 개를 없애고 다시 살리던 내 모습을 말해줘야 할까 상상하며 등받이에 기대었다. 웃기지도 않는 하루의 시작이다. 7시20분부터 30분까지의 10분이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했다. 크게 굴곡지지 않는 나에게 찬사를 보내면서도 오고가는 돈 속에 약간 우울해 졌다. 내 계획과 네이버 지도라는 기계의 계산이 틀린, 좌석의 푹신함이 기억나지 않는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_그렇게 땅 하고 나니 신발이 떨어져 몸이 피곤한 것 말고는 사람들과도 일도 간 곳도 다 너무 좋았다. 배부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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