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관계
갑작스레 자주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던 나날이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요즘 저를 건드리는 관계가 없어서 좋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요"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내 마음을 표현했었는데 하루 이틀 사이에 바뀌어 버렸다. 달라진 공기 속에서 나는 몇 번 손가락 살을 뜯었지만 곧 원래의 페이스대로 돌아왔다. 반복이었다. 계속 불안하지도 계속 평온하지도 않았다.
01_
오래되었다. 어느덧 10년 넘게 함께 한 관계에 이렇게 요동치는 불편함을 느끼게 될 줄 몰랐다. 그녀는 언제나 똑같이 행동했는데 내 반응이 달랐다. 사진을 찍을 때면 10년 전이던 후던 "우린 예쁘니까!" 를 외치고, 외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말들을 하곤 했다. 대화 당시에는 "예쁘지!" 동조하는 말을 하거나 관련 나의 관심사를 이야기 나누곤 했는데 오늘에서야 떠올려 보니 예쁜 사람이 좋다는 그녀의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았다. 스쳐가듯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는 말에 내가 왜 불편한걸까? 외적인 걸 신경쓰는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자 마자 "머리가 왜 그래" 이야기 부터 시작해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사진 찍기 바쁘다. 나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만 이쪽에서 저쪽에서 포즈를 어떻게 해서 다시 바꾸고 찍는 건 나를 피곤하게 했다. 원하는 것이 명확한 점이 좋은 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따라주면서 사진에 할애하게 되는 시간이 많다고 느껴지고 언젠가는 '또?'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다른 친구에게 누구 닮았다 누구 같다 라는 말을 자주했는데 그녀가 외적인 부분에 생각보다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고 불편했다. 돌아오며 나한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녀는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한 것 뿐인데 이게 왜 나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왔는지 다시 생각했다. 왜냐면 나도 분명 꾸미고 외적인 부분에 반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다음 만남을 기대하지 않으며 그녀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추측에 이르렀다. 단순히 가리키는 방향이 다른 것이 아니라 선의 모양도 다른 듯 했다. 그녀가 자신의 기준을 외적인 부분에 두고 직선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면 나는 완전히 내적인 부분에 둔다고 할 수 없지만 바깥과 안쪽 사이에 두고 구불한 선을 그려간다. 시간이 흘러 오늘의 이야기가 옅어지고 나면 또 다시 우리는 여행을 떠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때의 나는 그녀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계를 마주하게 될까.
02_
더럽다. 손바닥을 대고 싶지도 않아 손가락으로 슬쩍 잡아 관계를 버렸다. 이제까지 나왔던 나의 이야기들, 정보를 기억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앞으로 조심해야 겠다는 결심만 굳혔다. 괜히 내가 사는 곳을 이야기 했다는 후회만 남았다.
단체에 들어가서 자꾸만 수시로 오는 개인 카톡에 '이건 왜 이런 걸까?' 의문을 품었지만 티내지 않았다. 카풀을 해주던 사람이 거의 가스라이팅 격으로 "그 사람은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거지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 자기가 이제까지 봤던 그는 그렇다" 이야기 해 준 덕분에 실컷 '아 다른 의도 보다는 정말로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나의 능력을 잘 알아봐준 사람이구나' 하며 속았다. 물론 카풀했던 그 사람도 속아서 나에게 그럴 수 밖에 없긴 했지만 말이다. 조연출을 맡아달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일 것이다' 라는 인식을 기저에 깔고 친척을 대하듯 의심 없이 행동했다. 누군가의 가족이라면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제까지 몇 개의 동호회를 들어 사람들을 만나고 이처럼 나이 든 어른을 만났지만 이슈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 데이터와 이전부터 함께 하던 단체 안 사람들의 이야기로 의심을 지웠다. 내가 가족을 떠나 혼자 먼 곳에 왔고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간과했었다. 좋은게 좋다고 또 좋은 사람들만 가득하다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도 또 다른 누군가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경계하지 라는 불안함은 존재하게 되었지만.
오늘 목 어디까지 나오려는 욕을 삼키며 어찌어찌 카톡을 보냈다. 답장으로 배신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읽고 있는 내 눈과 이제까지 답장했던 내 손을 씻고 싶을만큼 찝찝하고 더러웠다. 으. 싫은 정도가 아니다. 차단하고 혹시 몰라 휴대전화 전원도 껐다. 내일 무사히 관계를 청산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