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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객관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같지만, 어쩌면

번지다

by 지니샘

'우리는 객관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같지만,

어쩌면 우리는 주관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이라는 개념, 하루의 24분의 1이 되는 동안을 세는 단위는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시간을 살아내는 사람들 모두에게 시간은 다릅니다. 객관성이라는 건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다름을 이해하는 존중을 배제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다르고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주관적인 사람이자 주관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저마다 다른 주관적인 시간의 총합이라면, 이 다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회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하나의 공통된 기준, ‘평균’을 제시합니다. 모두 한 줄로 세워놓고, 가장 가운데 놓인 지점을 ‘평균’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평균'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정당하게 느껴지고 어떤 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되지만, '평균'이라는 언어가 가진 힘과 권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가 보면 "우리 반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잘하는데 아닌 아이들도 있어. 큰일이야", '특수 유아, 특수 학급, 특수 학생'이라는 말을 듣거나 보게 됩니다. 평균적으로 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특수한 아이들과 평균적인 아이들. 어떠한 선을 그어두고 여기 넘어오면 평균, 넘어가면 평균 아님을 규정하는 유치원과 학교에서 선을 넘지 못한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가질까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까요? 자신의 속도와 특성을 살피고 아끼기보다는 평균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가 규정해 둔 평균에 들어가고자 발버둥 칠 것입니다. 다른 이의 발걸음을 살피느라 자기만의 걸음걸이를 잊고 남이 정해준 속도에 맞춰 뛰어가다 넘어지며 개인이 살아내는 시간, 자신만의 공간, 특성, 개개인의 차이를 보지 못하고 지나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무시된 차이가 모여 우리는 소외되고 편견적이면서 차별, 혐오가 심화된 사회를 만들게 되지요.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갈수록 사회를 구성하는 어른이라는 존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은 비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평균이라는 기준과 당연하다고 여겨온 세상의 방식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개인의 차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동일성을 기준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옳다고 믿고 또 다른 평균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격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 비움의 자리에 비로소 진정한 존중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비움에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속도, 특성을 잃지 않고 개개인의 차이가 온전히 빛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유행처럼 번졌던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에서 멈추지 않고, '다름을 존중한다'라는 격려와 응원 속에 함께 나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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