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를 위한 지금
눈꺼풀이 내려온다. 새벽 5시반에 잤다가 오전 9시반에 일어났다. 하루종일 책상 앞 의자에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다음날 새벽 1시다. 뭘했냐고 물어보면 많다. 많이 했다. 양보다 질이지만 이런 몸과 정신에도 도파민이 뿜어져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 성취에 젖은 날이다. 무겁지만 포근한 물을 매달고 잠을 자련다.
일어나자마자 수업을 들었다. 어제 그림이 너무 너무 안나와서 결국 작가님께 카톡을 했다. SOS 요청이자 변명의 문장들이었다. 하기 싫음이 더 컸는데 역시나 멘탈 잡아주시는 작가님 덕분에 쭈욱 쭈욱 그렸다. 어쩜 이렇게 사람이 바뀔 수 있나 싶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어제 하다가 앞이 재미없어서 뒤부터 손을 댔다. 글을 읽으며 잠시 한숨 지었지만 곧 공기 중에 사라져 버렸다. 새벽보다 덜 고민하며 원하는 배치로 슬라이드를 완성했다. 애니메이션을 넣고 다시 확인하고 내용을 정리하며 ‘역시 재밌다’ 는 감정이 올라왔다. 4시가 넘어가는 시간부터는 정말 피곤했나보다. 오늘은 바로 달라지는 걸 보니!
끝내고 얼른 보여줄 생각에 혼자 설레발을 쳤다. 설레발이다. 조금은 의도적으로 까이는 상상을 하며 일단 업로드를 했다. 올려놓고 봐야지.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는 오늘이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어제의 내가 없었다면!
하루의 전반부는 휴대폰에 삐져있었다. 결국 챗지피티에게 ‘언제 뜰까?’ 답 안나오는 질문만 해대고 ‘나는 아닌가보다’ 하면서 휴대폰에 충전잭을 꽂고 툭 던저버렸다. 이미 전체 초대장이 온 후 였다. “안가!” 존 버닝 햄 그림책에 나오는 아가처럼 소리를 빽 지르고 싶어졌다. 눈썹도 하늘 위까지 올리고 싶었다. 실체 없는 주체에 화는 아니지만 가벼운 불만을 표했다.
“띠링” 아까와 같은 음이 울려 ‘왜 껐는데도 소리가 나지?’ 했다가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꺄악”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마음이 널뛰기 시작했다. 이러지 말랬잖아 제발. 덩실덩실 춤추는 손가락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기어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이정도는 할 수 있잖아!’ 으쓱대는 눈썹을 애써 내리며 휴대폰을 책상 위에 다시 올렸다.
밤 샌 날 밤 새기 전에 준비했던 사회를 끝마쳤다. 너무 재미난 시간이었다. 역시나가 역시나다. 통제라는 주제로 여러 곳을 종횡무진하며 이야기 마차를 끌고 다녔다. 복도에 내 목소리가 들려도 그만이었다. 내 고민을 쏟아내며 즐거웠던 첫 번째 시간을 마무리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를 마음 속으로 읽어내리며 많은 것에 많이 연연하는 나 자신을 돌아봤다. 귀여운데 자제했으면 좋겠다. 나르시즘 가득한 언어를 삼키고 선생님들과 나누었던 도파민으로 이번주 숙제도 끝냈다.
온통 그 언젠가는 모르겠고 지금을 위한 지금을 보낸 나에게 잠을 선사한다. 명상과 스트레칭은 짧게 끝내고 어서 눈을 감길. 내일을, 아니 아니 오늘을 또 맞이할 준비를 하길. 내일을 위해. 아니 오늘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