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 물고 결국 들었다

써야만 아는 마음

by 지니샘

당연스레 말을 한다. 글자를 적는다. 궁금해 하지 않는다. 왜 말을 하는지, 왜 글자를 쓰는지. 물어 본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라고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 함께 나누고 싶어서 라고도 한다. 가지고 있는 의미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그럼 소통 하고 싶지 않거나 표현 하고 싶지 않다면 안해도 되는 걸까? 아니다. 내가 인식하지 못 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자를 적는다. 가만히 있기 심심한 신체 기관이 움직이고 싶어 말이라는 걸 하는 지도 모른다. 신체는 언제나 활동성을 갈망 할 수도 있으니까. 적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쓰는 것만으로 신체 그 자체의 성취감을 충족 시키고 있을지도. 하나의 이름을 가진 유일한 나라고 생각하지만 다양체가 모여 서로 돕고 갈등도 일으키며 살아가는 나일 수 있다. 그렇다고 나라는 존재가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양체의 존재를 탐구 할 뿐이다.


유아 교육 이론을 해체 하며 머리가 많이 복잡해졌다. 해서 그렇다. 내가 하는 생각이 나의 것이 맞는지 어디서 왔는지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뒤죽박죽 섞인 이야기들을 천으로 쪽 복 듯 쪽 뽑아도 낑낑거리며 얻을 수 있 듯 잡아 당겨 본다.


나는 반응 하면서도 순응한다. 무언가와 마주 했을 때 처음에는 호기심에 일어나는 것들을 해맑게 꺼낸다. 환경이나 타인의 반응에 따라 곧 적응해 간다. 적응은 호기심보다 조금 더 빠르다. 거푸집에 나왔는 듯 머리가 함께 굳어져 잘 뻗어 나가지 않는다. 더 이상의 호기심은 거푸집 안에서만 일어난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선생님들이 나를 좋아 하셨다. 그런 나를 벗어나고 싶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돌리고 눈을 움직인다. 그럼에도 아직 보지 못한 세상은 수두룩빽빽하다.


발달과 진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대학교에 가서 발달 이론을 배웠고 그 전에도 사람은 어떤 시기에 맞춰서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 생의 초기부터 어떤 발달 과업이 있는지 배우면서 ‘나는 전문성 있는 사람이야’ 가 되기 위해 생각을 읽지 않으려 노력 했다. 저명한 연구자들이 입증한 결과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내 삶에서도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지기 위해 앞으로 진보 하기 위한 사람이 되고자 하루 하루를 살았다. 현재를 소중히 하고 최선을 다 하는 거랑 미래를 위해 나아간다는 생각이 공존 했다. 여기서 사실이 아닌 말은 없다. 다만 믿음이 달라졌다. 내 안에서의 꼬리가 아니라 나를 넘어선 꼬리를 물어야 겠다는 생각이 생겼다.


나는 32살 아니 30살이다. 사람은 으레 나이를 먹는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생아 때는 구강기로 누구나 입을 사용에 빨고 점차 배변훈련을 시작한다. 돌이 될 무렵 쯤엔 걸어야 하고, 청소년기가 되면 이차 성징을 겪는다. 다 커서 교사가 되어도 처음에는 생존기를 겪으며 수난시대를 벌이고 점차 정체기 등을 지난다. 단계 익숙한 삶이다. 이 계단에 맞게 행동 하지 않으면 발달이 느리거나 비정상이 되고 만다. 정상이 아님으로 간주 되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확고하고 보편적이다. 누군가의 실험이 과학 기술이 밝혀 준 사실이기 때문에 내가 의심한다해서 연구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이름이 붙여진 이론을 보며 ‘내가 먼저 발견해서 공공연하게 말하면 내 이름 붙여주나’ 까지는 가봤지만 그들이 누구일지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딱 붙어 믿던 사실이라는 세계가 금가고 있었다. 사실이 아니다. 세뇌라는 단어까지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머릿속에 뿌리박힌 관념이고 담론이다. 발달, 진보를 처음 논한 자들은 남자고, 서양인이고, 백인이다. 짧은 지식으로 모두가 완전히 그렇다 할 수 없지만 정상인 그들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담론이 필요했다. 그들의 기준을 가지고 부족하면 더 나아가기 위해 도와줄 수 있다는 권력을 생산했다. 권력을 생산하는게 뭐가 나쁘지라는 생각이 들때면 그로 인해 소외 받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종속 당하고 소외되는 이들. 분명이 생긴다.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만연해진 이야기 속 나도 태어났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의문을 품게된 지금부터는 학생으로서, 교육자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금을 틈 타 망치질을 준비했다. 들어올리는 손에서 자꾸만 ‘그래서? 그럼?‘ 이 나를 불러세웠지만 일단 망치를 손에 잡고 들어야했다.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가 아직 내려치지 못한다. 못 할 수도 있다. 내가 자란 세상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들었다!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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