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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떨어지기

물질과 물질성

by 지니샘

_지각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물질성

언제 귀엽다라는 말을 하는가? 본인의 엄지와 검지로 만든 오케이 사인의 동그라미 보다 작은 원을 보면 어떤가? 그 작은 원이 나를 공격하는 무언가의 콧구멍이라면 절대 그렇지 않겠지만, 대부분 말하겠지. “귀여워” 내지 “귀엽네”. 그렇다면 노란색, 흔히 클리셰처럼 유치원을 떠올리면 그려지는 노란색을 머릿 속에서 재생시킨다면? 일단 이 글을 타이핑으로 치고 있는 글쓴이는 “귀엽다“ 라고 할 것이다. 그래. 그게 나다. 동그랗고 노란, 심지어 꼭지까지 있는 귀염둥이. 세상이 온통 나와 같은 색으로 물들어 시시해 할 때쯤 나는 듣기만 하던 여행을 준비한다. 옆 친구와 같이 떨어질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아직 안떨어져봐서 상상할 수도 없지만 왠지 짜릿할 것만 같은 여행을 말이다. 여행이 시작되는 신호는 있다! 바람이 불거나 줄기가 이쯤이면 내가 가도 되겠다는 윙크를 보내준다. 그럼 나는 이 세상에 몸을 맡기며 떠나면 되는 것이다. 더이상 노랗지 않은 세상으로!


_지각 불가능한 행위로서의 물질성

내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면서 곧 내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걸 아는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많은 이들이 추측하기 보다는 싱그럽다. 이야기를 꺼내는 나의 의미는 존재에서 나타나므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한쪽 시선을 감을 정도로 새그럽다.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소리로만 표현한다. 많은 이들이 떨어지는 순간이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나를 조금이라도 느껴주길 원하며. 아이 뭐, 느끼지 못한다 해서 부정적으로 감응되지 않는다. 나의 감응을 작동시키고 싶을 뿐.


_그 후, 지각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물질성

어느 것보다 강력한,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마찰이었다. 나의 여행은 꽤나 성공적이었지만 이를 기다리던 시간이 빠르게 그리워졌다. 이럼에도 저럼에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 싶던 여행을 했으니. 다만 조금 아플뿐이다. 고통이 나에게 감응되어져 왔을 때 고개를 들고 여기 저기 시선을 맞추었다. 그래서 여긴 어디인가.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더이상 행위하지는 않는 듯 했다. 잠깐, 내가 이동시키는 시야처럼 오다니는게 존재한다. 다른 물질을 의식하며 나는 또 한 번 고통 속에 휩싸였다. 아야. 이번에 나는 감당치 못하게 빠그라졌다. 싸매두던 가슴이 열리고 나니 시원하면서도 뻥 뚫어진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이렇게 부딪힌 이곳에 스며들어가는걸까. 아니면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는걸까. 내 옆으로 또 다른 존재들의 존재를 들으며 지금 당장은 눈을 감았다. 여독을 풀어내기 위해서.


_또 다른 물질인 글쓴이

가을이 왔습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카메라로 세상을 향하곤 합니다. 지금의 저만 볼 순 없거든요. 이 좋은 세상을. 동시에 눈 옆 미간을 잔뜩 지푸린채 곡예를 합니다. 가는 길에 떨어진 은행 무리를 발견했거든요. 보는 순간 향이 아니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합니다. 막진 않지만 숨을 멈춘 채 발걸음을 옮기다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저 은행들은, 바닥에서 발에, 바퀴에, 바람에 모마되는 저 은행들은. 저들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어떻게 작동하고 주체적인 저들의 이야기는 뭘까. 궁금해 합니다. 그저 떨어지는걸까, 아파하는걸까, 사람들의 시선과 이야기에 더욱 힘들어하는걸까. 그저 존재를 궁금해 합니다. 궁금하다는 표현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지 못해 궁금하다 하고 맙니다.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가며 느낀 감응을 은행이라는 물질로, 은행이 떨어지는 그 순간의 행위를 물질성으로 추측해 봅니다. 은행-되기, 은행이 떨어지는 순간-되기.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귀를 기울여 봅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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