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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사람은 모두가 생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모두가 다르다.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하기는 하지만 달라서 이 다름을 쫓아가게 되기도 한다. 모두가 가진 다름이 나와 다른 것들을 이해라는 마음이 생기도록 만들어주지만 또 이해되지 않도록 만든다.
모두의 경험이 다르고 감각적인 경험이 같더라도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다. 사람이 가진 맥락이 다르고 사실은 신체적인 감각도 다르기 때문이다. 꼭 꼭 씹어 소화시키는 것 같이 유연하게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나의 경험과 나의 지각과 내가 가진 것을 가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스스로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그럼 내가 아닌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건 완벽하게 그가 되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무언가가 되어 보는 것은 중요하다. 이 말은 다른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중요하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왜냐면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아닌 되기를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쩌면 이해라는 말보다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의 경험과 맥락과 정서를 내가 꼭 꼭 씹어 내 안에 삼킬 수는 없으니.
질적연구는 경험에 대한 분석이다. 연구참여자가 경험한 것에 대해 공감하며 연구참여자의 경험을 기술한다. 이해한다. 알 것 같은 추측이 이해일까? 단순히 인지로만 그를 분석하고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일까? 같이 눈물을 흘리고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 이해일까? 무엇도 이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과정이 이해한다는 말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질적연구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연구라는 행위가 기대되는 이유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와 내가 아닌 것에 대해서. 내년 이쯤에 질적연구를 진행하고 끝마치게 되면서 나는 연구참여자를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의 경험 속으로 내가 들어갈 수 있을지, 어느정도는 삼킬 수 있을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