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타인
새벽까지 일을 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해방감에 머지않아 눈을 떠서 해야 할 일이 더해졌지만 오늘, 내일까지 마감일에는 모든 일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생각보다 가벼운 속눈썹을 내렸다. 나 혼자 정리해 놓은 일이 잘못된 방식으로 처리되어 뜨끔하는 충격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떠밀리듯 바쁘게 무거운 속눈썹을 올려놓고 노트북을 열지도 않고 휴대폰을 내 옆으로 가져왔다. 뭘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방식으로 도파민을 충족시키고 이뇨감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본능이 세운 신체였다. 볼 일을 마치고 다시 눕지 않겠다 결심하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셨다. 엄마가 친절히 깎아놓은 과일을 먹기 위한 워밍업이다. 꿀떡 꿀떡 마신 물로 음식을 넣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저녁을 먹으려면 점심보다 아침을 먹는게 나아서 지금 먹을 음식을 챙겼다. 명란젓, 김, 따끈한 엄마의 온기가 담긴 밥, 냉동고 뒤지다가 보물 찾듯 만난 치즈케이크까지. 나이스. 견과류까지 야무지게 입을 채웠다. 언젠가 없어질 식욕을 생각하며 지금 본능에 집중했다. 자, 이제 준비는 끝났다. 노트북을 챙겨 어제 그 자리에 놓으려다 오늘은 그 앞자리에 위치했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겠지. 자리 하나 옮긴 것인데 말이다. 11시반, 벌써? 동그래진 눈을 모니터로 향했다. 자 진짜 이제 시작되었다. 오늘 나의 삶과 마감이.
2시반쯤 엄마가 왔다 가셨다. 엄마랑 같이 일하시는 이모가 물김치를 본인이 준비해 온 통에 덜고 잠옷 입고 자고 일어난 그대로의 얼굴과 머리로 삶을 맞이하는 나를 보며 "공부 열심히 해라" 하시는거다.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에 물김치 냄새만 잔뜩 남았다. 물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고약하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가 담근, 우리 아빠가 좋아하는 물김치를 싫어하지는 않기로 했다. 뭐 거북할 정도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손이 잘 안가는 음식일뿐. 언젠가의 나는 좋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익숙해질 듯 익숙해 지지 않는 냄새 속에서 나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포즈로 같은 얼굴로 같은 머리로 노트북을 딸깍 거렸다. '이대로면 저녁까지다' 를 마음 속에 품고 '아 새벽까지는 새지 말자' 다짐하면서.
'차량이 입차하였습니다' 기계의 힘을 빌려 가족들의 퇴근을 맞았다. 익숙치 않던 소리가 들려도 내 눈은 노트북을 향해 있었다. 소리가 꺼진 자리에 타닥, 딸칵 하는 내 신체가 남기는 소리만 남았다. 곧 또로롱 소리와 누군가가 들어왔다. 엄마다. "똑같네, 똑같아" 측은하게 나를 볼 듯한 엄마와 마주하지 못한 채 사이버 세상 속에서 한참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엄마는 넷플릭스를 켬과 동시에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셨다. 릴스를 만들며 또 나만의 욕심에 빠져 '언니 너무 열심히 하지마' 했던 동료의 이야기를 잠깐 잊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목소리에 요정도를 유지하던 때, 온건한 목소리가 또 한 명의 가족을 맞았다. "엄마 오늘 뭐 안하세요?" 엄마께 질문하자마자 "응" 곧바로 답이 왔다. "요새는 뭐 많이 안하시네요?" 작년에는 진짜 매일 하셨던 것 같은데, "니는 요새 뭐 많이도 하네" 나랑 놀고 싶은데 내가 너무 바빠 보여서 놀자 말도 못하는 것 같은 우리 엄마가 나에게 전했다. "그러게 내가 너무 미뤘나봐요" 내 말을 들은건지, 아빠의 등장에 "어머 머리가 너무 예쁘네" 우리집 다른 이슈를 이야기 했다. "아빠 머리 진짜 예쁘게 깎으셨네요! 근데 앞에 머리가 와이리 안잘랐노" 나도 한 숟갈 얹으며 반가워했다. 얼마 있지 않아 나는 2개의 할 일 중 하나를 끝내고 다른 하나를 준비하고 있었다. "밥 먹게 이제 노트북 정리 좀 해 줄래?" 주방에 방금 들어간 것 같은데 밥이 다 되었다는 엄마의 말씀에 "아니 엄마 방금 들어가셨는데" 작은 반항을 하고 다시 열중했다. 이것만 빨리 끝내면!
끝내지 못하고 나는 밥을 먹었다. "내가 9시까지는 해볼게" 가능할까 싶기는 한데 일단 내 뱉고 본 내 말에 엄마는 대답을 않은채 넷플릭스를 시청하시고 전화를 받고 끊으셨다. 아 그동안 아래층에도 2번이나 내려갔다 오시며 저녁 할 일을 하셨다. "아우" 내 말에 "어머!!! 끝났어 진아???" 대뜸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듣고 보며 조금 놀랐지만 "아니 아직" 나쁜 소식을 전해 시무룩해졌다. 나도 빨리 끝내고 엄마랑 운동도 가고 놀고 싶은데. 이때까지 바깥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 이러는 내가 나도 안타까웠다.
"진아 이제 그런거 좀 안하면 안되나", "사람 잡겠다 그거", "몸이 힘들잖아", "돈은 주나" 세상 안타까운 우리 엄마의 눈을 나는 보았다. 나 스스로도 불쌍해 할 만 한데 나는 사실 이렇게 내가 만들어 가는 과정이 좋아 9시간을 내리 똑같은 자세로 노트북 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내꺼 만드는거 좋아' 즐기기만 했다. 엄마 말씀을 들으며 '근데 엄마 나는 되게 좋다, 내가 하고 싶은거 하는거라서' 들릴락 말락 작게 이야기했다. 나보다 나를 생각하는 우리 엄마의 마음과 내 마음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내 몸에 그다지 좋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료를 만들어 가는 이 과정은 나에게 놀이라고 할만큼 즐겁다. 내 생각대로 원하는 형식을 창조해 가고, 이걸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리는 지금이 좋다. 계속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달에 한 번 정도는 가능하다. 오히려 좋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보다 나를 더 생각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갑자기 나타나 찾은게 아니라 계속 내 옆에 있던 사람을 발견한 것이었다. 우리 엄마, 나에게서 본인인 나보다 내가 아픈게 싫고 안했으면 좋겠는 우리 엄마는 어쩌면 엄마보다 나를 생각하는 듯 하다. 엄마 마음을 진짜 발가락 때 보다도 이해를 못하는게 아닌가 싶은 나는 상황 속에서 나를 보는 엄마를 느끼면서도 나에게 더 집중한다. 그게 내 할 일이라는 것처럼. 엄마가 법이라고 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내 세상이 생겨버린 나를 엄마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엄마의 눈을 떠올리면 가슴이 무너질만큼 파장이 클 것 같아 그저 아주 조그마하게 추측한다. 뭐라고 비유할 수도 없는 깊은 마음일 것이라고. 빨려가는 깊이 속 타인이라는 글자를 뽀글 뽀글 거품으로 만들어 올려보내는 나는 코를 열고 숨을 쉰다. 쉬는 숨에 그녀가 있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