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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얼마 전에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 했다요? 아니 우리가 이렇게 철학적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책도 읽고 공부하잖아요? 책이 너무 어려우니까 나는 이런 행위들이 이뿐이고 책을 덮으면 사라진다고 생각했어요! 머릿속에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지고 기억이 안 나니까! 근데 요즘은 삶에서 보이는 거야! 일상 속에서 내 관점이 변화하고 있고 내가 이걸 알아차리고 있는 게 느껴져서 너무 신기했어요"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느낀 감응을 나는 아직 느끼지 못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들뢰즈를 말하고 물질의 물질성에 대해 주절 거리지만 나는 안다. 내가 말하는 얽힘은 깊지 않다는 거. 그래도 자신 있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하고 다닌다. 왜냐면 더 지독하게 얽히고 싶으니까. 이걸 가지고 더하다/덜하다, 깊다/얕다 하고 있는 내가 아직 철부지 같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계속해서 보여주고자 시도하는 내가 나는 좋다.
반가운 만남을 했다. 우연히 고개를 들었다가 하늘 끝에 걸린 나무속 3개의 둥지를 발견한 것이다. 하늘의 까만 구름이라고 해도 어울릴 나뭇가지들 사이에 촘촘히 얽혀 있는 둥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총총총, 새는 내가 알지 못하는(알 수도 있는) 어디에선가 물어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하나씩 쌓아 올렸을 것이다. 그들만의 방식이라고 표현한 건 나는 둥지가 지어지는 구조 원리를 모른다. 나뭇가지는 나무와 만나 얽혀 존재되고 있었다면 새의 입은 나뭇가지에게 새로운 차이를 생성하게끔 했다. 그렇다고 나뭇가지가 이전에는 차이를 생성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새의 입~나뭇가지~새가 얽혀 나뭇가지는 자신이 아닌 나뭇가지~나뭇가지의 얽힘을 이루어갔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엮고 얽혀 고정시키는 방식 또한 얽혔겠지. 나뭇가지~나뭇가지~방식~새의 입~새는 또 다른 공간을 생성시켰다. 전체적인 나무와 둥지, 하늘을 우러러보다 그들의 얽힘까지 침투한 나는 약간 놀랐지만 반가웠다. 나뭇가지 안 깊숙이까지 계속해서 얽히며 ~나의 얽힘을 더해갔다.
누군가와 나의 삶이 지속적으로 얽혀 간다. 감응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까. 얽히는 삶의 지속성을 연속성이라고 불러볼까,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나의 사유가 삶을 얽히게 만들고 연속을 만들어낸다. 삶은 연속적이라고 굳게 믿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원도 그렇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들여다보면 다 승진 때문에 싸우고 어떤 선생님을 왕따 시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치고박고도 싸워요. 그럼 교수님들은 다를까요? 교수들도 다 싸워요. 가방끈이 길다고 해서 싸우지 않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아이들이 싸울 때는 어떻게 하나요? 교육자라는 사람들도 다들 싸우고 때때로 일어나는 일인데, 아이들에게서 싸움이라는 걸 한정 지을 수 없어요. 삶은 비연속적이죠. 한 단계씩 계단을 오르며 한 살씩 먹어가고 우리가 발달한다고 해도! 인생은, 삶은 그렇죠."
선생님들도 싸운다. 아이들에게 "얘들아 싸우지 말고 다른 친구가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 보자"라는 이야기를 달고 살고 "싸우지 마라" 거리지만 선생님들도 싸운다. 안 그런 선생님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이 싸운다. 집에서 자기 가족이랑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싸우고 유치원 또는 학교에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업무를 주었다고, 누군가가 인정하기 싫은 승진을 했다고 시비를 걸고 싸운다. 고등학생 시절 제주도로 떠난 수학여행에서 3명의 여자선생님들 중 2명이 같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나머지 1명 선생님이 혼자 멀리 떨어져 먹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욕을 한 것도, 흘겨본 것도 아니지만 그들 사이에 느껴지는 서슬 퍼런 강도가 식당 분위기를 장악했다. 뒤에서 우리는 "야 선생님이라는 사람들이 왕따 시키고, 아 진짜 실망이다. 교육자로서 그런 건 안 해야 하는 거 아니가?" 입 바른 소리라고 말하던 나는 교육자가 되었고 교무실에서 우리 아빠뻘 선생님과 싸우기까지 했다. "싸우지 마,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봐" 들리지 않지만 어디선가 익숙한 마음의 소리를 가슴에만 묻은 채로.
이것도 저것도 어떻게 어떤 상황에 어디에 대입하냐에 따라 다르다. 삶은 연속적일 때도, 비연속적일 때도 있다. 나는 그런 시간을 살아간다. 그런 이라는 말을 적기 싫다고 다짐했다가도 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적어버리는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