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또 보고, 그래도 덜 봤다

by 지니샘

당시엔 몰랐다. 다시 보니 보인다.


이래서 다시 보라고 하나보다.


아침에는 자기들끼리 수다떨고 놀기 바빠서 내가 있는둥 마는둥 "어? 왔네?" 정도의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한 번 불이 붙으면 화르륵 솟아난다. 관심 받기 좋아하는 나는 아침에 아이들이 주는 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처음에 왔을 때는 채윤이가 나에게 면사포를 씌우며 꾸미기 시작했다면, 이번에는 다나다. 아이들의 놀이를 돌아보며 연재와 우유푸딩 이야기도 하고 지민이는 무슨 생각일까 혼자서 지민이-되기에 빠지려고 할 때 쯤, 무엇을 할지 눈을 밝히던 다나의 레이더망에 내가 걸렸다. 행복한 쏘임이다. 원래도 다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다. 성격 자체도 시원시원, 눈치도 빠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지르고 해나가는 친구인데 어른과도 말이 잘 통해서 교사나 내가 하는 말에 티키타카를 보여주며 받아친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어른인 나에게 애정과 관심을 보일 수 밖에! 책상에 앉아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나가 갑자기 친구들을 불렀다. "야 이리 와봐! 우리 속닥속닥 하자!" 책상에 있던 친구들을 다 데려가더니 5초 정도 지났을까 다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흩어진다. 뭘까 고민하던 찰나에 고민은 하지 말라고 내 머리 위에 머리띠를 씌워주며 깔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아마 속닥속닥의 암호는 최미진 선생님 결혼식이었나보다. 또 한 번 이 공간에서의 결혼을 맞게 된 나는 그들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머리에 온갖 왕관이 왔다 가고 묶어진 머리에는 레이스가 달렸다. 나비 날개를 입으려다가 저지 당했다. 약간 뻘쭘한 듯 하 웃으며 날개를 든 지민이를 보고 "선생님 입고 싶어!" 하면서 내 앞으로 쏟아져 오는 온갖 꾸밈 재료들을 맞이했다. 허허 그저 웃기만 하면서. 속닥속닥을 주도한 다나는 소리가 커졌다. 하나의 아이템을 더 장착하게 되었는데 교사의 스마트폰이다. 내가 처음 교실에 들어온 날, 아이들과 나를 이어줬던 '놀이 선생님 꾸미기 놀이'를 마음껏 찍을 수 있게 교사는 다나에게 휴대폰을 주었었다. 내가 직접 보지 못해서 이게 요구가 있었는지, 아니면 교사가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서 이미 나를 찍고 있었다. "최미진 선생님 결혼식에 왔는데요~"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지만 다나는 브이로그를 찍는 것처럼 카메라를 들고 나를 향하면서 찰진 멘트를 했다. 기분이 좋은 듯 올라간 하이톤 목소리와 떠나지 못하는 웃음은 내 눈에서 그녀를 더 사랑스럽게 보이게도 했다. 하지만 정신은 없었다. 내 눈 앞으로 온갖걸 들이밀며 시야를 혼란스럽게 하는 아이들과 카메라를 들고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다나, 그 옆에서 영상을 보고 싶다고 따라다니는 아이들까지. 카메라를 내 코 앞에 대더니 "선생님 이거는 입에 무세요" 라고 하며 꽃 한 송이를 내미는거다. 뭔가를 봤나보다. 내 눈 앞을 적을 수 있다면 '댜ㅜㅍ,챋차우패 아랑내?!아량' 스쳐지나는 것들을 잡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당장 내 앞에서 나에게 다가온 아이도 무얼 하는지 정확하게 볼 수 없고 혼란함을 느끼는데 내 뒤에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절대 볼 수 없었다. 물었던 꽃을 소독하기 위해 씻으면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 돌아보니 한쪽에서는 나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촬영하고 꾸미고 계획하고 짝을 찾는, 찍은 영상을 보기까지해서 방금전까지 있던 왁자지껄 목소리가 지금도 같이 흘러나오는 그 곳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그 옆에는 동그란 책상 바닥과 벤치에 앉은 친구들이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노트북은 교사가 가져다놓은 쓰지 못하고 켜지지 않는 놀잇감이다. "선생님 뭐하고 있어요, 빨리 와요. 결혼식 시작해요" 누군지도 기억 안나지만 싱크대 앞에 있는 나를 붙든 친구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서예준이 내 짝이란다. 아이고, 그가 싫어한다. 날 거부해.


이렇게 두 번째 짝이 없는 나의 결혼식은 10분도 안돼서 미미해졌다. 타올랐던 불꽃이 다음 장작을 만나지 못하고 옆길로 붙어버렸다. 떨어진 것들을 주워 내가 바구니에 넣었다.


교실을 전체적으로 바라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아까는 궁금할 틈도 없었는데. 한참 이동이 있고 몇 시간 뒤에야 만나게 되었다. 또 다른 재미와! 내 뒤에 있던 친구들은 3명 정도 였는데 워낙에 요철 같은 소리들에 묻혀서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만은 보이는 게임, 모바일 게임 말이다. 팀도 있고 깨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게임.


처음에는 더 이상 켜지지 않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쥔 아이들이 그걸 들고 그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써억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감이었다. 재작년까지 있던 나의 교실에서도 그랬다. 허기워기가 나타나고 잡히지 않도록 도망다니는 아이들, 레인보우 프렌즈 자기는 누구를 맡을지 정하고 자신만의 포즈를 취하던 아이들, 종이블록을 세워서 아래를 누르고 세워둔 화면을 보면서 마인크래프트 집을 짓던 아이들, 막 뛰어가면서 허공에 폭탄을 던지고 내가 모르는 캐릭터 이름을 이야기 하던 아이들을 만나면 나는 '집에서 게임을 많이 하나 보다, 유치원에 와서도 생각이 나나보네. 그대로 두고 저 놀이를 계속하고 저 게임 생각을 하게 내버려둬도 괜찮나? 어떻게 하지? 중독 아니야?' 나만의 세상에서 아이들은 이미 게임 중독자들이다. 유치원에는 모바일 게임이 없다. 없다라는 건 그걸 할 수도 없고 관련된 것들도 없다. 아이들에게는 있지만. 환경에는 없단 말이다. 어디서 게임을 하던 유치원에서는 조금 더 아이만의 순수한 놀이를 하기를 바랬다. 아이만의 순수한 놀이라니, 내가 지어낸 아이들이 들으면 웃긴 말이다. 아이만은 뭐고, 순수는 뭐고, 그거에 붙인 놀이는 무슨 놀인데? 물어보면 나도 답하지 못하지만 모바일, 컴퓨터 게임과 관련되면 순수에서 벗어난다고 믿어버린 나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려 하고, 아이들이 가정에서 사용하는 앱을 알아보며 그 앱에 대한 정보를 플레이스토어에 들어가서 알아보며 연령에 맞는지 등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아이들은 "너 집에서 로블록스 해?", "나 집에 가면 하는데!" 했지만. 그게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함을 찾는 교육이 무엇인가? 유치원에서 교구로 하는 놀이는 순수한건가? 모바일 게임은 순수하지 않은가? 도대체 순수가 무엇인가? 아이들은 순수하지 않다는 건가? 또 아이들에게 순수라는 말을 계속 들이밀건 뭐람? 다시 떠올리며 끝없는 질문 속에 빈정거림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이런 나를 잘 알고 있는 내가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만났다. 정신 없던 당시 현장에서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고 아이들은 이야기 나누고 움직이고 만지고 두드리고 내리치고 돌고 딸깍 거리고 눌렀다. "너 우리 팀이야?" "나 깼어!!" 검정색 화면을 보면서 1초마다 표정이 바뀌고 어깨가 들썩거리는 아이들을 보니 순수했다. 순수가 무엇이라고 지금도 말은 못하지만 아이들이 꼭 순수하게 보였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계속 듣고 싶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궁금하다. 무엇이 아이들을 빈 화면으로 이끌고 어떤 그림을 상상하게 하는지. 반대로 비춰오는 그 당시의 풍경이 말해주는게 무엇인지, 아이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지.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 말들이 나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켰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집에서 얼마나 게임을 하고 어떻게 하고 무엇을 하고 왜 하는지가 궁금하기보다는 지금 저기서 일어나는 아이들과 그 관계가 궁금했다. 그 안에는 아이들의 경험도 있었고 아이들이 보는 환시도 있었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도 있었다. 있었던 것이 많은데 짧은 내 말로는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된다. 혹시 더 생각나는게 있다면 적어보겠다. 다시 보며 전환을 느낀 나도 있었다. 아직 전사가 끝나지 않았다. 많이 남았다. 오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해보겠다. 그리고 많이 궁금해 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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