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도
사람이 곁에 있었다. 끊이지 않았던 거 같다. 항상 말을 지켜 주는 엄마 아빠와 ” 우리 강아지 내 새끼 “ 하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응원해 주시는 친척들, 일상을 공유 하던 이웃들, 학교나 학원 집 근처에서 만나는 친구들. 내가 자발적으로 내 방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늘 사람들과 함께 했다. 내가 자발적으로 내 방에 혼자 들어가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먹고 이야기하고 나누고 울고 웃고. 사람들 틈에서 나는 컸다.
우리 가족은 네명이지만 실질적인 가족은 많았다. 같이 살아서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가치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맘 같지 않던 친구들은 있었지만 대부분 격려와 사랑 속에 사람들이었다. 이는 지금 계속 내가 살면서도 잊지 않고 나도 누군가에게 가족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을 잇게 한다. 아니 내재하게 하고 받은 것들이 얽혀 나를 구성한다. 내 신체와 정신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다.
첫째인 나에게는 처음인 엄마가 있다. 나도 엄마에게 처음이고 엄마도 나의 엄마가 처음이라, 엄마의 기준과 틀에 나는 맞추어졌다. 처음의 반복 속에 나는 풀어졌다가 조여졌다. 윗집에 남자 형제가 밤마다 쿵쿵 거리는 탓에 엄마는 힘들었다. “진아, 걸을 때는 소리 안나게 걸어야 해” 나는 뒷꿈치를 들고 조용히 걷는 걸 연마했다. “쓰읍 딱!” 엄마의 눈이 올라가면 나는 커질수도 풀어질 수도 없었다. 이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사랑이었다.
어린시절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면 그러니까 마음이 힘들었던 때 말이다. 가족이 흩어졌다. 큰 사건이었고 이로 인해 우리는 저마다 피 나지 않는 생채기가 생겼다. 생채기 덕분에 우린 더 끈끈해졌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비치지 않는 서로의 생채기가 덧날까 드러내어 아프다 하지도, 약을 바르지도 않았다. 세월은 생채기난 우리를 성장시키고 늙게 만들었다.
어린이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차이 생성을 멈추지 않고 얽혀 가야 할 존재다. 이런 존재가 숨 쉬는 아동기는 차이생성이 세월 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나가는 시기다. 알듯 말듯 결국 아는 것도 모르는 것고 나 혼자 해버리고마는 나의 아동기, 어린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