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ㅅ
” 울고 웃지 않게 두발로 서있, 야 취시 좀 해줘“ 노래를 들은 건지 만건지 리모콘을 든 친구가 무심하게 취소를 눌린다. ”안 올라간다, 그만 할래” 요란한 점수 소리와 함께 “점수 제거할까?” “어어 시작!” 친구가 마이크를 잡는다.
이전에 나왔던 노래가 무엇이었냐는 듯 깔끔하게 새로운 전주가 올려 퍼진다. 이 노래 또한 “취시” 두 글자로 꺼지고 다음 노래에게 자리를 양보할지도 모른다.
취시. 취소, 시작. 짧다면 짧고, 간단하다면 간단한 글자가 노래방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회피형이었다. 삶에서도 취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친구에게 오빠를 소개 받았다. 호감도가 단 뿐이라 연락도 하고 만나서 밥도 먹었다. 길에서 산책을 하다 오빠가 말했다. ”우리 만나 볼래?” 힘겹게 꺼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 채로 아주 가볍게 “그래” 라고 대답했다. 다음날이 되어 연락을 하는데 갑자기 오빠가 “우리 그럼 오늘 1일이야?” 말을 듣자 마자 오잉? 나에게서 어제 만나자는 계속해서 얼굴을 보고 만남을 이어 가자 라는 이야기였지, 사귀자 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아직 그 단계까지가 아니었다. 당황스러움과 부담스러움이 나에게서 일렁거렸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지금 내 부담이 너무 커서 오빠에 관계를 회피 하고 싶어졌다. 그럼 이야기해서 더 이어 가면 되지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 나는 그 오빠가 용기 낸 것에 대한 미안함과 서로가 좀 뻘쭘 하고 무엇보다 오빠가 나에게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급하게 관계를 마무리 짓고 그 오빠에 대화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가 미안하다. 나는 더 이상 계속 연락을 할 수가 없을 거 같다 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카카오톡을 탈퇴 해 버렸다. “취소! 취소!” 취시하고 싶은 순간이다. 물론 다시 시작 한다면 그 오빠랑은 아니겠지만.
살다 보니 삶에서 취시는 있을 수가 없다. 책임을 피하면 있을 수도 있긴 하지만. 책임을 지지않고, 피하는 것은 그에 대한 결과까지 내가 품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 더욱 더 중한 책임을 요한다. 지금의 나는 취시 버튼들을 누르지도, 누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럴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하고 꿈 꾸기도 하지만, 그건 꿈일뿐이다. 대신 취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본다. 다시 시작하는 의지를 돋우기 보다는 출발에서부터 의지를 가진다. 그래도 삶이라는건 내 마음 같지만 않고, 변수가 많아 언제 다시 취시를 외치고 싶고 취시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일단은 노래방에서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