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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나

고쳐쓰기

by 지니샘

매일 글을 쓴다. 주말을 깜빡 했다. 주말은 쓰지 않는다. 쉰다. 평일 텅 빈 메모장과 아직도 매일 주춤거리는 내 손가락을 마주한다. 글감에 따라 흥겨워 춤 출 때도,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멈칫 거리기만 할 때도 있다. 글감은 아침에 일어나 첫 번째로 머리에 각인 시키는 텍스트다. 하루종일 그림을 그린다. 글감이라는 색깔을 오늘은 어떻게 비벼볼까, 어떤 식으로 칠해볼까 하고 운동을 갈 때도, 하늘을 볼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한 구석에 있는걸 자꾸만 들춰보고 불러내고 찾고 찍어내보며 만난다. 물론 못 볼 때도 있다. 같이 있다보면 계속해서 상주하는 투명한 무언가가 담긴다. 그건 바로 나다. 급박한 나, 늦잠 잔 나, 도서관에 간 나, 움직이는 나, 표면적인 모습과 내면적인 정신으로 구성된 내가 쑤욱 튀어나온다. 오늘은 나 말고 다른 시선! 을 외쳐도 결국 회귀처럼 나로 돌아간다. 고쳐쓰다는 글감을 보고 나나 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징징거리다 여기까지 온다.


평소에는 관점을 달리하지 않아 글을 쓰면서 다양한 관점을 경험하고 싶었다. 다른 물질이 보는 세상을 그려내 보고 싶었다. 내 눈으로 못하는 걸 손으로 하고 싶었달까? 그치만 새로움 가득하던 초반이 지나고 지금은 나의 글쓰기 틀에 갇혀 뱅글뱅글 돌고 있다. 뭘해도 내가 떠올라 필터가 씌워지지 않고 전이 되지 않는 느낌이다. 정체되면 정체되는대로 몇 바퀴고 돌아다니며 이렇게 많이 투영시켜도 다 알지 못하는 나에게서 다른 존재를 만나고자 한다. 몇 바퀴일지, 얼마나 있을지, 걸릴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말이다.


전지적 사물 시점이라는 책을 빌렸다. 사물을 그 순간 보이는대로 그리고 사물의 시점에서 쓰인 시가 있다. 나도 이런걸 써보고 싶다 생각하며 고쳐써지는 물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찾으면 그게 되어 볼 작정이었는데 됨을 실천하려고 했는데, 어렵다. 고쳐서 내가 사용하고 있는게 있나? 이또한 무언가에 의해 수동적인 것보단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고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택 하나 달았을 뿐인데 더욱 더 거의 제로에 가깝게 생각이 안난다. 주변 무언가가 고장이 잘 나지도 않는 것 같다. 고친다는 표현에서 고장으로 넘어가니 얼마전 수선했던 치마와 바지가 떠올랐다. 허리가 3인치나 차이나 수선하고 딱 맞게 입을 수 밖에 없었다. 훌러덩 흘러내리는채로 입고 다닐 수 없었으니! 고치고 나니 지금 현재 나에게 똑 맞아 떨어져 기분이 좋다. 수선해주시던 사장님도 유쾌하셔서 사실 수선한 의류들 보다 사장님과의 대화, 분위기가 장면을 잡아먹었다. 치마와 바지를 고치고 수선했다는 생각보다 재미나신 사장님이 딱 들어맞게 고쳐주셨다는 관계가 기억에 남는다. 일상을 샅샅히 훑어가며 고침 옆에 두고 눈을 아래, 위, 양 옆으로 움직인다. 얼마전 집 주인이 수리해주신 환풍기, 고쳐야 하는데 별 불편함이 없어 그때 그때 수리하고 쓰는 세면대의 혓바닥 같은 부분, 자꾸 빠지지만 다시 만들기 귀찮아 매번 끼워넣는 연필 뚜껑. 고친다는 의미보다는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상관 없다는 감정 없는 의사가 많다.

그런 내가 내게서 내 의지로 매일마다 고치는 걸 찾았는데 그건 바로! ‘언제나 고쳐지는건 나였다’ 반복해서 고치고 고쳐지는 내 생각과 마음이다. 순간, 상황마다 또는 계기를 통해, 아무일도 없는데도 자꾸만 새로 고쳐지는 나! 고정적인 부분이 없다 말할 수 없고 나만의 틀이 견고히 존재하지만 자잘하게 세분화된 내 생각은 차이를 반복하고 반복을 차이나게 한다. 잘게 잘게 쪼개져 미세한 생각들이나 마음들이 나에게서 고침, 또 새로고침 되어지며 하나도 같지 않은 차이들로 존재한다. 이 속에서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기 보다 흥미롭게 고쳐진 차이를 수용한다. 수용이 내가 가진 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고침을 먹는 입?!


대학원을 다니면서 내년 생각을 안할 수 없다. 내년에 나는 많이 고쳐질거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 논문이. 벌써부터 3학기 선생님들의 “지금 제 모습? 선생님의 미래에요” 를 들으면 내가 얼마나 닦이고 분해되고 조립될지 그저 웃음만 나온다.


하핫. 고쳐먹어서 나중의 내가 어떻든 지금 나는 배부르고 잠이 온다. 자고 나서 또 고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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