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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머티즘과 실용주의의 혼동을 읽고

존듀이의 경험과 교육

by 지니샘

저번주에 부록 1장을 읽으며 실용주의와 프래그머티즘을 찾아보고 알아보았다. 내가 알던 듀이는 실용주의가 아니구나, 단순히 번역상의 차이가 아니라 듀이가 담고 싶은 이야기는 프래그머티즘만이 담고 있구나, 듀이 하면 가장 먼저 '실생활!' '경험!' 부터 떠오르는데 그것이 무언가를 실제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구나, 듀이가 강조하는 건 그 과정이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지식이 아니라 그 내면의 흐름을 중시하구나 까지 이해하며 1장을 덮었다. 내가 찾아보며 프래그머티즘과 실용주의를 알아버렸는데 2장에서는 고개만 끄덕이지 않을까? 하며 2장을 펼쳤다.


자신만만하게 2장을 읽으며 나는 끄덕임보다는 조금씩 수그러져 갔다. '프래그머티즘은 그러한 최종적인 지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새로운 경험이나 지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최종점에 위치한 절대적인 경험이나 지식은 프래그머티즘의 사유 체계에는 들어설 여지조차 없는 전통 철학의 낡은 잔재이다.' 듀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록 선명하지 않은 내 안에서의 듀이가 긴 문장을 랩하듯 전해주고 이제껏 내가 생각하는 유용이라는 그 유용은 그 말이 아니라는듯 고개를 내젓는다. 그럼에도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만큼까지 듀이의 말을 해석하고 일단 지식은 무언가를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 운동하는 존재이고 이것이 경험의 재구성이자 성장, 교육과정이라는 점만 이론적으로 알고 가는 나는 아직 많이 멀었다!


나는 2장에 가장 많이 나온 '지식' 이라는 단어를 보면서도 정확하게 듀이가 말하는 지식의 의미를 내가 말로 풀이할 수 없다. 듀이의 이야기 조각을 모아 모아 듀이의 지식을 짐작할 뿐이다. 이러한 지식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하늘에서 언제 저물지 모르게 깜빡 거리는 오래된 별 같이 느껴져 내가 아직 듀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 라고 다시 나를 의심하게 된다. 무언가를 인지하고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정보' 라는 개념으로 지식을 바라보면 지금부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식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 뻔하다. 이미 컴퓨터라는 것, 통신이 발달되면서 지식의 홍수는 몇십년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고 지금은 AI가 지식을, 우리를 잡아먹고 있다. 생각하는 고등생물이었던 인간의 자리를 AI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보다 얼마나 지식이 많고 유용하게 잘 해결하고 움직이는지 사실 다른 것 다 필요없이 AI랑만도 살 수 있고, 어쩌면 나중에는 AI만 살아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다시 듀이의 지식을 떠올려보면 한 단계의 경험으로서의 지식은 이후의 지식, 또는 이후의 경험을 낳는 데에 기여하는 도구이다. 언어라는 것이 주는 힘이 굉장히 강해서 도구면 도구에만 한정되는 것 같고 지식이면 지식, 경험이면 경험 내가 아는 그 제한에만 가두어 두는데 이제 그러지 않고 이 도구는 그 도구가 아닌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자 한다. 지식이 또 다른 지식이나 경험, 그 과정을 낳는 도구이자 과정이자 경험이자 교육, 등등등 이라면 이 지식을 계속되게 만들 AI가 아닌 인간, 인간으로서의 내가 지식으로, 지식을 위해, 지식에 대해, 지식으로서 할 것은 무엇인가. 3장을 읽으며 또 찾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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