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와 다르지만 우리 아빠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지내고 있다. 철학자의 이야기, 스님 이야기, 교수님 이야기, 부처님 이야기, 동료 선생님 이야기, 내 이야기, 가족들의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작가님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가는 귀가 좀처럼 많이 열리지않아 아쉽지만 성인들의 이야기만으로 만족한다. 무언가를 듣고 쫌쫌이 촘촘하게 내 생각을 해보려 시간을 가진다. 오늘은 아빠랑 전화를 하다 자꾸만 자꾸만 이야기를 곱씹었다.
희대의 큰 일이 일어났다. 한 통신사의 유심이 털린 것이다! 유심 작은 두 글자가 뭐! 하기에는 다가올 일이 어마무시하다. 해결방법은 유심을 교체하거나 통신사를 옮기는 것! 하필이면 나와 아빠, 우리 동생이 가입한 통신사에서 일이 벌어졌다. 알뜰요금제로 전부터 유심을 내가 사서 셀프개통을 했던 나와 동생은 당장 통신사를 바꾸었다. 택배로 받아야 하는 줄만 알았던 유심이 편의점에도 판다는건 동생 덕분에 알게 되어 기기에 빠삭한 동생에 대한 신뢰도가 더 올라가기도 했다! 우리 둘이 바꾸고 아빠의 유심도 교체해 드리려 저번주 주말에 집에 갔던 동생에게 그 전주부터 신신당부를 했다. “야 꼭 잊지말고 아빠 유심 교체해드려!!! 알겠나?” 이 메세지만 전달하려고 전화를 몇번이고 했다. 주말에 내려간 동생이 만남의 사진을 보내길래 당연히 했을줄만 알았고 주말에 나도 너무 바빠 연락을 못했다. 그러고 오늘, 아빠와 전화를 하다가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진아 이거 편의점에서 어떤 유심을 사라고? 뭐해야하노?” 암시롱 모르겠다는 아빠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 하다가 “환이가 주말에 안해주더나????” 하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내질렀다.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 아빠꺼 빨리 바꿔야 하는데! 내가 못해드리고 온게 너무 걸려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잘 아는 동생이 해드릴거라 철썩 같이 믿고 있어서 더 열이 났다. “아니 걔는!!!!! 내가 전화를 하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안해주더나????” 빽빽 열을 내는 나에게로 ”뭐 사야하노?“ 아빠가 두 번째 물음을 했을 때 성격 안좋은 나는 ”아빠 그거 셀프개통이 혼자 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지금 못사요!“ 하고 흥분해 말했다. ”알겠다“ 하며 아빠가 전화를 끊고도 ”하” 하며 분을 삭히던 나는 차마 일하는 동생에게 전화할 수는 없어 혼자 ‘왜저래 진짜 애가!’ 속으로 툴툴 거렸다. 감정은 불 탔던 만큼 빠르게 식었고 곧이어 아빠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뭐해용“ ”일하지~“ ”아니 아까 내가 환이한테 그전주부터 아빠꺼 바꿔야 한다고 말했는데 안했다니까 너무 열받아서!“ 또 오르려는때에 아빠가 말했다. ”이미 못한건데 어쩌겠노, 니가 와서 해줘라“ 팅 하고 내뿜으려던 불이 폭싹 꺼졌다. 아까의 열기마저 식혔다.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인데 내가 열 내는게 의미가 있나’ 아빠의 한 마디가 계속 나를 맴돌았다.
감정과 나, 삶에 대한 고찰이 어디서나 이야기로 회자되고 지속적으로 따라다닌다. 오늘 나에게 성인군자였던 우리 아빠의 한 마디가 다시금 나를 성찰시키고 고찰하게 만들었다. 요즘 내가 빠진 철학자가 니체인데 어떤점에서 홀렸냐면 삶에 대한 긍정과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는 그의 생각이 참 좋다. 이를 바탕으로 영원회귀하는 삶, 그 속의 차이. 나로서 나에 대한 존중을 길가다 생각한 니체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귀엽고 존경스럽다. 내 삶을 사랑하고 우연을 긍정하고 또 한 번 해보면서 나를 믿는 것! 일상에서도 긍정과 사랑, 그렇다고 나에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허무에 빠지지 않는 공함을 지키고 싶은 나. 이런 내가 5월13일의 이야기를 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