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그믐달이 내려오던 언젠가였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틈에 헤롱한 우리가 내딛는 곳은 바다였다. 몰래 먹는 음식이 더 맛있다고 방금까지 먹던 것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움직였다. 큰 바이킹을 지나, 단체로 온 사람들의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지나, 소나무 숲을 지나, 신발이 푹 하고 들어갔을쯤 도착했다. 바다다. 바다 앞에서 와 본 적 없는 정신이었다. 파도 소리가 들릴랑말랑 신발 틈으로 들어가는 모래가 더 잘 느껴지는 바다다. 바다를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행복해서 더 할 말 없이 우리는 계단에 털썩 앉았다. 엉덩이에 모래가 묻든 묻지 않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바다. 눈앞에 있는 바다가 중요했다. 지대가 조금 낮아졌다고 살랑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바람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신은 없지만 행복하다. 좋은 밤이구나.
해탈한 듯 받아 든 손보다 입술이 더 떨리는 걸 보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온갖 게임들로 공간은 전보다 추잡스러워졌지만 알알이 모두의 기억 속에 박힐 추억은 선명히 진해졌다. “어디 갔다 왔냐? “ ”너네 단독 행동 하지 마라! 우리는 우리다! “ 뭐라고 하는지 내일 알랑가 싶은 말들이 오가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엉덩이 붙들어 매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한참을 깔깔깔깔. 밤은 기니까. 오늘이 가는 게 아쉽다는 듯 모두가 한 마음으로 웃어댔다.
“여기 에어컨이 잘 안 되는데?” 웃음을 멈추게 한 친구의 한 마디와 손가락 표시로 다 같이 심각해졌다. ”주인아저씨한테 전화해 봐 “ “야 여기 다른 집에서도 그렇고 에어컨 너무 많이 틀고 있어서 그런가 봐” 북극곰의 눈물보다 많이 흐르는 펜션, 민박집의 에어컨 물 때문에 우리는 이 방 가득 차인 열기에 열기를 더했다. 달달달달, 다시 한번 에어컨이 힘을 내보고자 우렁찬 소리를 뻗자 “오 이제 된다!” 끊긴 이야기는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새로운 이야기들로 공간을 채워갔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재미나고 유쾌했다는 한 가지는 기억할 수 있었다.
름, 여름의 밤은 길고도 밝았으며 시원하고 즐거웠다. 우리가 나눈 추억을 마실 수 있었다면 분명 달고 진했을 것이다. 새벽에 추운 이들은 방으로 들어가고 더위를 호소하는 태양인들만 에어컨 앞에 남아 다리를 어디까지 뻗어대며 잠들었다. 색출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크르릉 코 고는 소리와 색색 숨을 내뱉는 이들의 숨들이 모여 또 하나의 밤, 새벽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떠나아하는 아침이 된 것이다.
은수저를 서로 갖겠다고 싸우다 “라면 다 불어서 너희는 이제 못 먹는 거다” 이상한 걸로 싸워대는 둘을 보면서도 무겁기보다는 가벼운 말이 붙여지고 아무 소리 없이 다들 라면을 바라본다. 퓨우 연기 나는 라면을 한 젓가락 들어보며 나는 고프지 않지만 준비하고 있는 뱃속을 문질렀다. 뜨거운 라면이 어제의 열기를 다시 찾아주는 듯했지만 날아가버릴 연기만큼의 아쉬움을 후루룩 먹어 해치웠다. 설거지 당번 정하기 게임으로 또 한 번 시끌시끌, 자기 물건 챙기느라 분주한 여름이 가고 있었다. 날짜도, 정확한 장소도, 민박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또렷한 여름을 기억하게 해주는 그날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