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의 대상이 계속 움직인다.
가족의 죽음에 따른 심경 변화에는 단계가 있다고 한다.
쳇 gpt한테 물어보니 단계가 있다고 한다. 쳇 gpt의 자료의 검증은 해본 적 없으니 진위 여부는 모르겠지만 얼추 맞는 것도 같다.
사망 직후의 아빠의 모습을 바라봤을 때,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아빠의 영정사진과 염할 때 누워있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 집에 아들이 없으니 상주가 없어서 안타깝다는 예전 직장 동료의 말이 내 가슴 깊이 박혀 있어서 인지 아니면 평소 아들이 없기 때문에 어떨 것이다란 주변인들의 말, 아들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주변인들, 형제들로부터 아쉬운 말을 들었던 아빠의 심경을 알아서인지 몰라도 나는 악착같이 장례를 잘 치르겠다며 상주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저 아빠의 자식으로 잘 살았다는 보답으로 장례만큼은 잘 치러줘야 한다는 의지로 그 절차를 이행했을 뿐 여전히 죽음이 수용이 안 되었다.
그 후 나는 때로는 아빠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죄책감도 들었으며, 깊은 슬픔에도 빠졌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빠와 함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추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분노의 단계에 다시 돌입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화가 나는 것일까?
자다가도 문뜩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온다. 잠을 한동안 못 이루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화, 분노, 피해의식, 복수심과 같은 악한 감정은 나를 파괴하고 있다. 몸의 한 기관에서 조금씩 피를 내뿜고 있다. 악한 감정들이 마치 가족들을 향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 몸을 스스로가 망가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그만두려고 노력한다. 분노의 감정이 심장까지, 머리끝까지 차올라도 '다들 사정이 있겠지'라며 다스린다. 이해와 용서는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나를 위한 것이고 그것이 내가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