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닌 이벤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예전 회사생활을 할 때 많은 장례식장 조문을 다녔었다. 장례예절도 잘 모르던 사회초년생이라 복장을 갖추지 않고 갔었던 적도 있었고, 절을 몇 번 해야 할지 머뭇거렸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장례식장 조문은 나에게 낯선 행위였다.
그리고 막연하게 위로를 했었던 것도 같다. 친한 친구의 부모상의 경우에는 다른 경우보다는 더욱 진심으로 위로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족의 상실 경험이 없는 나는 감히 그 감정을 예측도 할 수 없었다.
아빠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잘 견딜 것이라 생각한 나도 사실은 큰 타격을 입었고, 지금도 입고 있다. 감정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족의 상실감을 가족으로부터 위로받으려고 하니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을 때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도 나처럼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었겠거니라고 생각하고 만다.
생각보다 많이, 아빠의 부재는 우리 가족의 삶을 흔들어 놓고 있다. 그리고 긍정적인 측면으로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성공과 명예, 부의 축적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건강관리를 꼼꼼하게 하고, 돈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으다 보면, 막연한 꼭짓점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하던 나이다. 하지만 그런 절대 선의 순간이라는 것은 없고, 이는 허상일 뿐이다. 우리는 순리대로 태어나 언젠가는 소멸한다. 지금의 몸을 잠깐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아빠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읽고 있다. 아빠가 평소 불교에 관심이 많으셨던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 살아생전에는 불교에 그다지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지금은 아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셨을까 싶기도 하고, 책의 제목에 관심이 가는 책들을 골라서 읽고 있다.
지금은 "소풍 가듯 가볍게"라는 책을 읽고 있다.
어제 읽은 대목 중에 깊은 울림을 줬던 대목은, "욕심을 부리며 삶을 살면 업이 되고, 순리대로 살면 공덕이 된다."는 문구이다. 대가 없이 공덕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남을 돕으면 나의 공덕이 되지만, 대가를 바라고 남을 도우면 어떤 가피도 없다고 하고 있다. 내가 대가를 바라고 남을 돕는 순간 그 행위는 되려 나를 지옥에 빠뜨린다고도 한다.
여전히 모든 명예욕과 금전 욕심을 다 내려놨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나의 노력의 성과가 곧바로 일어나지 않는 것에 매몰되어 나를 지옥에 빠뜨리지는 않으려고 마음을 다스릴 뿐이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에 너무 큰 애정과 집착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타인을 배척하고 시기, 질투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살과 피, 뼈로 이루어진 육체는 소모품으로 언젠가는 소멸될 것이다. 나에 대한 집착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한다.
위 책의 글귀가 나를 위로하고,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기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