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사실 난 불교에 대해 잘 모른다. 불교 용어는 더욱 모른다. 하지만 아빠의 종교 영향으로 불교에 관심이 생긴 것뿐이다. 그리고 엄마의 불교 영향도 한몫한다. 법률스님의 말씀이 와닿고, 큰 위로가 될 때가 많아서 그 영상을 자주 본다.
'관세음보살'이라는 용어 또한 무슨 뜻인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마음이 혼탁해지고, 눈과 귀, 코로부터 지각한 여러 유혹 요소들에 내 마음이 빼꼈을 때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마음을 정비하다는 뉘앙스만 알 뿐이다. 세상의 유혹거리에 너무 큰 관심을 가지면, 그것들이 나의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나 자신이 힘들어진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번뇌와 괴로움에 빠져 산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성사되지 않을 때 깊은 고뇌, 괴로움에 빠진다. 그리고 욕심만큼 사업이 성장하지 않을 때 또한 괴로움에 빠진다. 괴로움에 빠질수록 내 몸이 망가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고 있다.
젊을 때야 욕심 내며 살아도 내 몸은 끄덕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 몸에도 화를 있는 대로 내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래도 과거보다는 성숙했으니 쉽게 화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몸은 나의 화를 그대로 받아내고 있다. 그렇게 내 몸속 장기는 조금씩 균열이 나고 있다.
화를 낸다고 일이 더 잘 풀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이 풀렸으면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력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과를 이룰 것이라는 마음 또한 없어야 한다. 나는 노력을 할 뿐이고, 그 결과는 세상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마음속에 담고 있지만 말고 그에 부합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삶의 종착점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죽음이라는 결론에 누구든지 도달한다. 그 종착점에 다다르기 전에 누군가는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희로애락을 충분히 느끼며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스스로가 삶을 만족하면 그뿐이다. 그가 떠난 후 남은 이들이 그를 기억해 주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기억은 그들의 것이다. 내가 기억해 줬으면 하는 이미지로 나를 기억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드는 여행계획을 짜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싶었던 여행지를 찾아서 다니는 것이 아마도 가장 만족스러운 여행이 아닐까 싶다.
신은 나에게 삶이라는 여행을 가라고 비행기 티켓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기꺼이 그 선물을 받았다. 나는 지구 여행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