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은 시간이 지나간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모든 좋은 것들을 내 몸에 장착하려고 아등바등 산다.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많이, 남들보다 더 오래 좋은 것들을 갖고자 경쟁하며 살아간다. 성인이기 때문에 질투심, 시기심을 표정 밖 혹은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떤 무리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나의 성과를 뽐내고 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고 남의 행복은 나의 시기의 대상이다.
하지만 삶은 정말 꿈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빠가 사라졌다. 내가 그래도 40년 남짓한 세월을 살았지만 눈 한번 깜박한 것 말고는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무심하게 세월은 째깍째깍 잘도 흘러간다.
어젯밤에 아빠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아빠의 젊은 시절, 아빠는 등산도 거뜬하게 하셨던 것 같다. 아빠도 그렇게 힘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아빠가 한순간에 땅 속으로 소멸했다. 삶은 화살처럼 순식간에 소멸되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리고 젊고 활력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가. 나의 작은 노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가. 요새는 뭐든 "덕" 쌓는다고 생각하며 일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의 피드백이 내 욕심껏 오지 않는다며 낙심하기보다는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일에 임한다. 그렇게 삶의 행복, 가치를 되새기며 하루를 보낸다. 하나의 노력으로 만 가지의 성과를 이루려는 것 또한 지나친 욕심이 아니겠나 싶다. 그리고 어떤 피드백이 온들 마음을 비우지 않는다면,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욕심은 화를 부르고, 결국 스스로에게 좋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나를 되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지금까지 남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살기 위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남들처럼 집도 있어야 하고, 차고 있어야 하며, 직장도 있고, 명품 가방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가생활은 사치이고 조금이라도 여유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에 영어 공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남들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했다. 하지만 그 끝은 과연 어디인가 싶다.
남들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그 기준은 과연 어디인가. "남"이라는 기준은 어디인가 되짚어 본다.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화려한 인플루언스가 기준인가, 대학 동창이 기준인가, 대기업 CEO가 기준인가. 과연 그 기준이라는 것이 있긴 있는 건가. 그 지점에 다다르면 내가 생각하는 막연한 행복은 찾아오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나의 생명의 등불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 생각해 본다.
삶을 즐길 줄 모르기 때문에 외형적 조건을 추구하는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죄책감이 들 정도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친해지려는 노력도 그다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몸이 아픈 것도 나이고, 불행한 것도 나이다. 가족이라도 그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없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해서 해서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혼자 있는 시간을 어색해하지 않으려 한다. 가끔 미용실도 가고, 책도 읽고, 혼자 여행도 하면서 삶을 수시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삶의 결산을 무한정 미룰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나도 삶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