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서야 말을 할 수 있었다.

by 김정은 변호사

가족에게는 유독 친절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회사 생활, 사회생활처럼, 고객에게 대하듯이 가족들에게 한다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인데, 막상 현실에서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렇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조금은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내 감정을 가족들에게 더욱 쉽게 드러내는 것도 같다.


한편 아빠에게 평생 동안 고맙다, 사랑한다, 존경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 감사한 마음에 대해 표현을 하는 것이 어찌나 쑥스럽고 어색한 지 아빠 얼굴을 마주보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빠는 누가 봐도 멋있고, 존경스러운 인물이다. 사회적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더불어 사는 동안 많은 덕망을 쌓아 오셨지 않았나 싶다. 정도 많은 분이고 다른 사람들의 걱정도 함께 나누는 분이셨다. 그렇기에 자식인 내가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틀린 말도 아닌 것이다.


그런 말을 나는 아빠가 생을 마감한 후에야 했다. 아빠가 장례식장에 안치되기 직전 병원에서 단 둘이 남겨진 그 순간에서야 진심 어린 말을 할 수 있었다.


존경스러운 분을 가까이서 모셔서 감사했다고 말이다.


그 말을 나는 10여 년 간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 상사분들에게 했던 것도 같다. 국장님, 과장님께 해본 적이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평생 그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그 말은 아빠가 삶을 마친 순간에야 했다.


왜 그렇게 가족들에게 하는 칭찬이 인색할까. 지금도 사실 그렇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에게 칭찬이 인색해서인 것도 같다. 가족을 나처럼 생각하고, 가족에게 칭찬을 잘하지 않는 것은 결국 나에게 칭찬을 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나의 노고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듯이 가족의 노고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를 무시해서라기보다는 더 잘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큰 것 같다. 쉽게 인정하고 칭찬해 버리면 더 큰 발전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우려, 욕심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특정 목표를 달성해야만 칭찬을 해준다고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충실한 일과를 보낸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은 어떠한가.


결국 오늘의 내가 행복해야 미래의 나도 행복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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