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가족들의 애잔함,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곳

by 김정은 변호사

지난주에 아빠 납골당에 다녀왔다. 납골당에 가면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만 해도 죽음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납골당은 그렇지 않다. 저 마다 떠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한가득 있어 보인다.


아빠 납골함 주위에 다른 이들의 묘비에는'꿈엔들 잊힐까, 너무 그립고 사랑한다.'와 같은 글귀들이 쓰여있다. 세상 사람들은 각자의 생업에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결국 모든 생의 끝은 있을 수밖에 없다. 묘비에 적힌 말처럼 가까운 이들의 마음속에만 남은 채 흔적도 없이 세상을 떠나 버리는 게 삶이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삶을 사는 것인가. 결국 한 줌의 재로 될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재는 정말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방금 전까지 몸무게 65kg, 키 175cm 이상의 거구였던 사람이 너무나 황당하고 당황스럽게 내 손바닥을 겨우 채울 만큼의 재로 변해 버린다. 그리고 그 재는 금세 바람 따라 흩날리고 땅 속으로 스며든다. 이 모든 과정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나 또한 '결국 한 줌의 재가 된다'는 말의 의미가 별로 와닿지 않았다.


한편 집 한 채를 마련하고자 평생을 바친다 하더라도 나는 그 집을 이고 지고 저승길에 갈 수가 없다. 집을 산 순간 그리고 내가 죽기 전까지 등기부에 내 이름이 나타났다는 것뿐 그 이상의 성과물을 취득할 수 없다. 다들 내 집 마련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집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안정된 노후 생활을 위해 자가인 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각종 인터넷 매체의 글과 영상들은 허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가의 집은 결국 자가가 아닌 것이다. 아주 비싸게 산 월셋집인 것이다. 잠깐 살 집을 아주 비싼 값을 주고 산 물건인 것이다. 그러니 자가 집을 마련하기 위해 매일을 희생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집에 살면서 내가 쌓아온 추억뿐이다. 그 추억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내 소유가 될 수가 없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세상을 등진 아빠를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구입하는 모든 것들이 내 소유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한번 물건을 사면 영원히 내 소유가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마치 굉장한 보물인양 집에 모셔두고 있는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인생을 살고자 허비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 보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의 삶의 궁극적 가치를 되새겨 보고, 나의 주파수를 맞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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