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카너먼의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보다 더 어려운 건 언제나 ‘끝’이다.
이별은 늘 어색하고, 때로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일하는 누군가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마음 한편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잘했거나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헤어지느냐가 남은 사람들의 기억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직하는 직원에게 말한다.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가 중요하니, 마무리를 잘해라.”
이는 단순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심리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처럼, 우리는 관계나 경험을 전체가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년간 함께한 관계라도, 마지막 인사가 어색하거나 불편했다면 그 기억이 모든 시간을 덮어버린다. 반대로 무난하고 깔끔한 작별은 서로의 체면과 마음을 지켜준다.
이번에 떠나는 직원은 조금 특별했다.
일의 성과는 보통 이상이었지만 ‘그만두겠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고,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좋고 싫음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일명 '카더라' 소식을 빈번하게 전달하며 대화의 소재로 삼았고, 그런 와중에 다른 팀원과 갈등도 생겼다. '아니면 말고' 식의 소통 방식으로 종종 문제를 유발했다. 나는 팀장으로서 그의 개선 가능성을 믿고 싶었지만, 동시에 매번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파도에 휘말리는 게 부담스러웠다. 퇴직 면담을 통해 그가 수개월 이상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퇴직 이후에 하게 될 일을 들어보니 그와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무난하게 헤어지고 싶다였다.
‘무난하다’는 건 어쩌면 특별한 칭찬이다.
무난함 속에는 절제된 감정, 엄선된 말, 그리고 성숙한 자기 통제가 들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의 거리두기(emotional detachment)’라고 한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관계의 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다. 이 힘이 없으면, 우리는 이별 앞에서 쉽게 분노하거나, 후회하거나, 상처받는다.
나는 이번에 그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좋은 이별’을 기대하기보다, 그저 평온하고 무난한 안녕을 맞이하자고 다짐했다.
퇴사 당일, 내가 그 직원을 회의실로 불렀다.
“수고했어요. 함께 근무하는 동안 열심히 일해줘서 고마웠어요.”
“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좋은 일 있길 바랍니다. 건강도 잘 챙기세요.”
그 말은 형식적이었지만, 진심이었다. 감정의 잔물결이 잠깐 일었지만, 금세 잦아들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인생은 이해하기보다 견뎌내는 것이다.”
헤어짐도 그렇다. 모든 이별을 아름답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난하게 견뎌내는 건 가능하다.
‘무난한 안녕’은 서로의 마음에 흠집을 남기지 않고 관계의 문을 닫는 가장 성숙한 방식이다.
이제 그가 없는 자리엔 약간의 공기가 비어 있지만, 그 빈자리는 곧 자연스레 채워질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 같다. 화려한 만남보다, 무난한 이별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누군가의 퇴사를 마주하거나 헤어져야 할 순간이 오면 스스로 다짐해 보자.
“좋은 인연이든, 불편한 인연이든, 무난하게 안녕하자.”
“We do not remember days, we remember moments.”– Cesare Pavese
“우리는 날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순간을 기억할 뿐이다.” – 체사레 파베세
무난한 안녕이야말로, 그 순간조차 담담히 받아들이는 어른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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