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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un 22. 2024

영원한 숙제, 융통성

 팀원이 40명 정도 되다 보니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마음으로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어떤 업무보다도 직원 관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된다.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더 높고, 공평과 형평을 중요시하는 Z세대와 알파 세대부터 퇴직을 앞둔 5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부서장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팀 내 협력자와 조력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직장으로서 무엇인가 추진하고자 할 때 ‘한번 해봅시다’라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팀원이 많다면 조직 운영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부서장 1년 차 때는 업무 파악하고 부서원들 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2년 차부터는 어떻게 하면 조직 운영을 더 잘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부서 내에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계층별로 1~2명씩 추려보았다. 그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추진하고자 하는 일의 중요성을 공유하며, 수평적인 부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구했다. 피드백과 조언을 구하는 팀원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경청했다.


  9시 정시 출근과 6시 칼퇴근에 목숨 거는 젊은 직원들, 아직은 코칭이 필요한 과장들, 임금피크를 앞둔 세 명의 부장까지 각자의 상황이 다르다 보니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3개월 후 퇴직하는 A가 며칠 동안 사전 보고 없이 점심 이후 이른 오후에 퇴근했다는 사실을 어제서야 알았다. 홀로 계신 노모가 병원에 입원하여 돌보러 간다는 것인데, 자기 옆자리 후배에게만 알렸을 뿐, 부서장인 나는 물론이고 내 바로 밑의 부장에게도 사전 보고를 하지 않았다. 부서원이 40여명이고 휴가 가는 직원이 매일 매일 다르므로 누가 책상에 앉아 있는지 수시로 챙길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 어제 그 사실을 알고 매우 황당했었다.

 임금피크를 앞둔 직원이 부서 분위기를 흐리고 일을 하지 않으면 젊은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기 마련이다. 만 55세가 되면 임금피크 (만 60세까지 근무하되 매년 임금이 삭감되는 구조)를 할지 위로금을 받고 퇴직할지 결정하게 되는데 A는 퇴직을 결정했다. 퇴직을 몇 달 앞둔 사람들의 근태를 관리하지 않는 부서장들이 일부 있고, 그것이 일종의 관례처럼 굳어졌기에 세대 간의 갈등 문제가 왕왕 발생한다. 젊은 직원이 많은 우리 부서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근태관리는 부서장의 기본 책무다. 휴가 입력을 안하고 퇴근하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그때의 책임은 온전히 부서장의 몫이다. 하루 종일 머리가 지끈거렸다. 난감한 상황이다. 다른 부서장들처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지, 원칙대로 해야 할지 갈팡질팡 망설였다. 나를 무시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화도 났지만 일단 차분하게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부장을 통해 A에게 전할 메시지를 남겼다.


  “모친이 다쳐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도 사전 보고는 해야 합니다. 오늘뿐만 아니라 지난 일자에 대해서도 휴가 입력을 해 주십시오.”


  A 말고도 임금피크 대상자는 둘이나 더 있다. 그들은 내가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관심이 많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지침이자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 3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 이렇게 해이하게 근무해도 되는 걸까?

 사전에 나에게 보고했다면 나의 반응이 달라졌을까?

 사전에 보고했다고 해도, 나는 분명 휴가 입력을 하라고 했을 것이다. 스스로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휴가 입력 같은 가치관의 영역에 있어서는 인간미 없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처럼 느껴져 고민이 깊다.


Key Message

1. 융통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관련 직원의 이해관계를 자세히 분석하라.

2. 사규에 예외는 없다. 반드시 준수하라.

3. 중요한 의사결정은 시간차를 두고 삼세번 고민하고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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