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라는 곳간의 곡식은 배움을 통해서만 채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인풋과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배움에 목마르다. 관심 분야마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쫓다 보니 부족한 낱알의 종류가 달라졌다.
많은 일을 완수하고 또 새로운 일을 벌이다 보니 나의 하루는 정해진 기간 내에 미션을 수행하는 서바이벌 게임 같다. 새벽에 줌(Zoom) 강의를 듣고 책을 필사하며 글쓰기를 한 다음에 20분 정도 아파트 단지를 산책한 후 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깨우면 그때부터 총알같이 출근 준비를 한다. 이것이 나의 아침 루틴이다.
회사에 출근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위로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임원, 옆으로는 경쟁자인 동시에 협력도 해야 하는 팀장들이 있고 아래로는 40여명의 직원이 있다. KPI 달성을 위해 작은 결정부터 큰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의사결정을 하는 부서장이기도 하다. 내가 맡은 부서는 업무의 가짓수가 많고, 유관부서와 협의를 자주 해야 하며 IT시스템과 APP 업그레이드 등 고객과 직결되는 업무가 많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긴다. 매일 정해진 시간 내에 업무가 완결되지 못하면 고객 민원으로 일이 커져 버린다.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는 여러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머리는 하나보다 둘이 낫다. 예외는 없다.
퇴근 후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재밌게 보냈는지, 학원 수업을 따라가는 데 별 어려움은 없는지 다양한 질문을 시도하지만, 딸아이는 언제나 아이돌그룹 세븐틴 이야기만 쏟아낸다. 딸과 대화를 더 하고 싶지만 줌으로 진행되는 독서토론회가 있는 날에는 저녁도 못 먹을 만큼 빠듯하다. 너무 허기가 지면 화면을 꺼놓은 상태에서 책상에서 밥을 먹기도 한다.
집에 오면 쉬는 게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독서토론회에 아득바득 참가하려고 기를 쓴다. 책을 읽다가 내 마음에 꽂히는 문장을 만날 때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희열을 만나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힐링이 되는 그 느낌이 나는 참 좋다. 성장을 위해 자양분을 계속 주입하고 하고 있다는 위안도 엄청난 유혹이다.
벽돌책 읽기, 주 1회 독후감 쓰기, 3주마다 진행되는 경영과 마케팅 독서 모임까지 총 3개 그룹에 참가한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것을 처리하려다 보면 못해내는 게 있기 마련인데 그럴 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더 부지런했어야지, 시간 관리를 더 잘했어야지’라며 나를 채근하게 된다.
시간에 쫓기게 되면 감정적으로 사달이 난다. 직원에게 부드럽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데 마감 시간이 닥치면 말이 빨라지고 표정도 무미건조해지는 모양이다.
타 회사에서 부서장을 하는 친구가 말했다.
“너는 악센트가 좋다 보니 목소리가 크지 않더라도 직원들 가슴팍에 말이 그냥 꽂힐 거야.“
혼이 난 직원의 낯빛이 냉담해지거나 억울하다는 표정이 되면 내가 더 억울한 심정이다. 일을 제대로 처리 못 해 꼬이게 만든 사람은 직원인데 내가 ‘화’를 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책감에 휩싸이며 자신을 탓하는 말을 한다.
‘그러게, 여유를 가지랬잖아. 여유가 없으면 네가 원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도 없는 거야.’
성취한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쫓기는 느낌이다. 이룬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숙제하는 기분으로 산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스스로 격려와 칭찬을 줘야 할 텐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이제 내 곳간을 채울 곡식은 시간과 에너지다.
그래서 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원론적인 질문을 다시 던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직장생활을 성실하고 지혜롭게 해내야 하고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지식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놓쳐서는 안 된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가능하다. 엄마, 아내, 부서장의 역할에 커뮤니티 활동까지 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턱없이 부족하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많이 먹기보다는 안 좋은 음식을 덜 먹는 게 몸에 이롭다. 일의 성과도 다르지 않다. 목표를 상기하고 할 일과 하지 말아야 일부터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계속 뭔가를 배우면 자기만족은 있을 수 있으나 진짜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그 배움이 부합하는지 점검 해 봐야 한다. 시간 관리를 하지 못하면 정작 중요한 일은 시작도 못 한 채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하게 된다. 중요한 일을 시작도 하지 못했기에 불안하고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내가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 원씽(One thing)에 집중하고 가장 중요한 일부터 완성해야 한다. 그래야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목표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