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 순박한 향토 음식 맛집
강원도 하면 무슨 식재료가 떠오르는가? 필자는 가장 먼저 메밀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저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 영향이 클 것이다. 하얀 메밀 꽃이 무성하게 피어있는 메밀밭을 상상하며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메밀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맛은 심심하지만 가슴이 편안해진다. 강원도 여행을 떠나기 전 순박한 강원도의 정취가 담긴 음식을 먹어 보고 싶었는데, 여러 군데 찾아 본 결과 순메밀100%의 토면을 파는 식당을 발견하였다. 오전 계곡물에 발만 담그듯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 설악산의 풍경을 살짝 즐긴 다음 시장기를 갖고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도심지역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앞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어서 주변 풍경은 다소 어수선했다. 주차장이 식당 길 건너 있어서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시골 가정집을 개조한 정감 있는 인테리어였고 홀은 의자에 앉아서, 안쪽 방은 바닥에 앉아서 먹는 구조였다. 우린 홀에 있는 손님과 거리를 두고 오붓이 식사를 하기 위해 안쪽 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뭘 먹을까 고민을 하고 있으니 중년의 사장님께서 주문을 받으러 오셨고 우리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셨다. 우리는 토면(순메밀100%)한그릇과 감자옹심이 그리고 촌두부를 주문하였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벽에 걸린 토면에 대한 설명과 웰빙식단 인증서를 보며 제대로 된 식당에 잘 찾아왔구나 안심이 되었고 기대감이 올라갔다.
가장 먼저 밑반찬과 함께 촌두부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주변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촌두부는 복숭아씨가 워낙에 좋아하는 음식인지라 품평을 부탁드렸다. 가격으로 보았을 땐 국산콩으로 만든 두부인 것 같았지만 별다르게 맛이 특출나진 않았다. 여느 두부와 큰 차이점이 없었다. 생각보다 손이 가지 않아 식사가 끝날 무렵까지 다 먹지 못하고 몇 덩어리 남겼다. 버리기 아까워 사장님께 포장을 부탁드렸는데, 포장 용기에 두부를 가지런히 담고 간장양념장까지 따로 포장해 주셔서 그 친절함에 감동을 받았다.
다음으로 감자옹심이를 맛보았다. 딱 보기에도 속이 편안해지는 고소한 비주얼이었다. 뜨끈한 토기 그릇 안에는 감자와 약간의 칼국수면과 옹심이가 담겨 있었고 그 위에 김가루와 참깨가 두둑이 뿌려져 있었다. 국물을 조심스레 호로록 맛보니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낸 듯 개운하고 감칠맛이 났다. 김가루와 깨가 어느 정도 간을 잘 맞추어 줘 양념간장을 굳이 넣지 않아도 되었다.. 감자옹심이는 식감이 아주 재미났다. 친환경적인 전분의 느낌이랄까 흔히먹는 전분요리의 식감보다는 훨씬 더 쫄깃해서 장난감을 먹는 듯 재미난 기분이었다. 옹심이에서는 향긋한 향도 났는데 아마도 자연의 향긋한 향을 유도한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다소 인위적인 향으로 느껴져 아주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들꽃이 첨부된 듯한 은은한 비누 향이 풍겼다. 하지만 국물과 감자가 담백함으로 그 향을 잘 잡아주어 전반적인 맛은 좋았다. 강원도의 토속적인 느낌이 충만하게 풍기는 좋은 음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토면을 맛보았다. 한 그릇만 주문하였는데 사장님께서 센스 있게 그릇 두 개에 사리를 반반 나눠 각자 취향으로 토면을 잘 즐길 수 있게 신경 써 주셔 감사했다. 먹는 방법 또한 친절히 설명해 주셨는데, 간장이 짤 수 있으니 처음부터 많이 넣지 말고 조금씩 먹어보며 양념하라고 하셨다. 양념장은 식초, 겨자, 다대기, 간장, 설탕이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아무것도 넣지 않은 오로지 토면 그 자체를 먼저 맛보았다. 약간 텁텁하고 쉽게 툭툭 끊어 지는 면발이 입안에서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풍미가 구수하게 전해졌고 메밀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살짝살짝 씹히는 메밀껍질이 투박했지만 메밀의 풍미를 완성시켰다. 본래 메밀 고유의 맛을 즐기러 왔기 때문에 아무 양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도시적인 현실에 순응이라도 하듯 양념을 기호껏 첨가해서 먹어보았다. 푸석한 식감에 액체가 약간씩 첨가되니 윤활 효과가 생겨 먹기에는 더 편했다. 간 또한 기호에 맞추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후루룩 넘어갈 정도로 친근한 맛이 되었다. 아이러니하였다. 태생으로부터 원초적인 자연의 맛은 점점 어색해져 가는 반면, 미래에서부터 다가오는 도시적이고 인공적인 맛에 친근해져 가는 현대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자연친화적인 재료를 중요시하는 식당을 알게 되어서 뿌듯한 마음이 든다. 이런 식당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점차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식을 발전시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향토적인 본 연 그대로의 맛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이 든다. 시장기를 없애기 위한 요량이라면 심심한 곳이지만 나는 그 심심한 정적 속에 심오한 생각을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식당이었다.
身土不二!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