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 더덕구이 황태구이 정식 맛집
강원도 여행에 있어 마지막 포스팅이자 가장 인상 깊었던 맛집을 소개하고자 한다. 운이 좋게도 전날 폭설이 내렸으나 새벽에 하늘이 맑게 개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은 위로는 하늘이 구름한점 없이 푸르고 양옆으로는 길가의 나무에 눈이 풍성하게 내려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겨울 여행 특유의 고요하면서 우아한 느낌을 충만하게 받으며 기분 좋은 드라이브 길이 되었다. 식당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은 진부령 황태덕장이 유명했다. 마을 어귀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차갑게 얼어붙은 빙벽이 우리를 환영하듯 떡하니 서있었는데 한 폭의 진경산수화가 따로 없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빙벽에 눈길이 강렬하게 사로잡혀 우리는 차를 잠시 세우고 가까이서 두눈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추억을 남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눈으로 덮여 입구가 막힌 탓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저 빙벽 아래에 황태 저장고가 있다고 한다. 저토록 강한 한기를 머금고 오랜 시간을 버텨낸 황태는 강한 에너지를 발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식재료라니 황태는 어찌 보면 우리 민족에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식당은 길가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주인 내 안집으로 보이는 작은 주택과 주차장에는 장작더미와 아궁이가 정겹게 있었다. 주차를 하고 아기자기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구식 장작 난로가 존재감을 뽐내며 자리 잡고 있었고 7-8개 테이블 남짓 있는 작지만 적당한 크기에 포근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마침 주인장 할머니께서 tv 연속극까지 보고 계서 더욱 일반 가정의 정겨움을 느꼈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고 싶어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가 겨울 햇살이 생각보다 너무 따사로워 한 칸 물러섰다. 자연에게 인간은 한없이 고개를 수구려야 되나보다. 메뉴를 보니 정식으로는 더덕구이와 황태구이가 있었는데, 우린 식당의 이름에 걸맞게 더덕구이 정식을 주문했다. 사장님께서 홀로 일을 하시는 것 같았다. 사람이 몰리면 음식이 나오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지만 평일 한적한 시간에 방문한 탓에 손님이 우리 밖에 없어서 상은 금방 차려졌다.
짧은 기다림의 시간 도중 벽면에 걸린 사진에 눈에 익은 익숙한 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랑식객으로 유명한 故 임지호 셰프였다. 터프한 손길로 음식에 정을 가득 담아내는 요리법에서 깊은 감동을 받아 필자도 요리를 할 때 간을 터프하게 하는 편이다. 식이란 인간에게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나의 인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신 분이기도 했다. 그런 분이 방문을 한 식당이라니 기대감이 고조되었고 때마침 차려진 먹음직스러운 반찬과 더덕구이를 보니 침샘이 폭발하였다.
가장 먼저 지글지글 기름에 제대로 구어진 이 정식의 주인공인 더덕구이를 맛보았다. 기름이 보기에도 많아 보였는데 역시나 기름의 고소한 향에 더덕 특유의 향이 많이 가려져서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적당한 두드림으로 살짝 찢어진 더덕에 철판의 뜨거움이 더해지니 식감이 아주 좋았다. 입안에 한점 넣고 씹으니 더덕의 찢어진 결들이 느껴지지만 이내 부드러움으로 바뀌어 금방 뱃속으로 사라졌다. 맵지도 않고 타지도 않고, 더덕의 풍미가 어느 정도 살아있었으면 정말 맛이 있었을 것 같지만 참기름인지 들기름인지 기름의 유향이 강해서 아쉬웠던 주인공이었다. 너무 잘생겨서 그 느끼함에 오히려 호감이 생기지 않는 연기력이 다소 부족한 미남 배우가 문득 떠올랐다.
그러나 실망은 잠시였다. 반찬을 맛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반찬들마다 식감이 예술이었다. 총각김치는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고 아삭한 식감이 좋았고 생나물 무침은 신선하면서도 야생 풀의 질기거나 빳빳한 느낌은 전혀 없이 숨이 적당히 죽어 부드러웠다. 한 두가지 나물반찬은 너무 맛있어서 사장님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 직접 산에서 이것저것 채취해서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고 하셨다. 사장의 솔직한 답변에 오히려 진짜 자연산 나물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다른 반찬들도 개개인에게 맞는 개성 있는 식감을 정확히 가지고 있었다. 간 또한 여느 강원도 음식과는 다르게 약간의 짠맛이 살짝씩 느껴져 심심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김치는 볶아져 나와서 맛깔스러운 맛김치였지만 생 김치를 먹음으로써 식당의 요리 실력을 판별하는 나로서는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다른 반찬으로 주인 할머니께서 이미 재야의 은둔 고수임은 대번 눈치챘다.
하이라이트는 다름 아닌 쌀밥과 황태국이었다. 다른 반찬 없이 이 두 가지만 나왔어도 만족스러웠을 정도이다. 황태국의 맛이 어찌나 그리 깊던지 시중에 파는 msg가 가미된 육수 분말보다 몇 배는 더 감칠맛이 났다. 본래 생선을 맑게 우려내면 아무래도 약간의 느끼함을 피하기 힘든데 이 집의 황태국은 느끼한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개운하면서 시원했다. 거기다가 적절하게 느껴지는 약간의 고소함. 안에 들어있는 재료도 황태, 콩나물, 무, 파가 다인데 어떻게 이런 맛을 끌어올렸을까. 주인장의 요리 실력에 감탄을 했고 존경심이 생겼다. 쌀밥은 확실히 압력은 강하게 받아 고슬하지 않고 쌀 안속까지 완벽하게 익어서 적당하게 찰기가 띄어 식감이며 쌀의 풍미며 완벽에 가까운 밥이었다. 오죽했으면 무의식적으로 젓가락으로 밥만 살짝 집어 입안에서 충분히 씹어 단맛을 느꼈다. 결국 국물 한 방울 쌀 한 톨 남김없이 포만감과 만족함을 뱃속 가득 품은 채 식사를 마쳤다.
복숭아씨에게는 비밀이었는데 이 글을 읽으실 것이기 때문에 미리 죄송함을 전한다. 사실 이 식당에서 일반 정식을 맛보았을 뿐인데 순간 든 생각은 만약 이 집에 사위가 있다면 맛있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 강원도의 꼬부랑길을 돌고 돌아서라도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요리 실력이라면 한 달에 한 번은 꼭 방문할 것만 같았다. 나 또한 인제를 지나갈 일이 생긴다면 굳이 식사시간을 맞추어 이 식당에 재방문 할 것 같다. 강원도 여행의 마지막 식당에서 고수의 깊은 손맛을 느낄 수 있어서 운이 좋았고, 좋은 추억만을 간직하고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함께해 준 복숭아씨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유슐랭 투스타 *
Excellent cooking, worth a detour.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