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달인에 나온 경산 잔치국수 맛집
필자의 부친은 대략 2년 전 당하신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현재까지 열심히 재활치료를 하고 계신다. 재활병원 인근 전문의를 찾아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부모님을 보필하였다. 안과와 비뇨기과 단 두 개의 진료지만 시간은 쏘아 올린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덧 시간은 정오가 되었고 부모님과의 오붓한 점심 식사는 아직까진 시기상조여서 다음을 기약했다. 부모님을 재활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나오니 가슴이 텅 빈 것처럼 시원섭섭함을 느꼈다. 허기가 급격히 찾아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간단히 혼밥으로 허기를 채워야겠다 마음먹었다. 텅 빈 가슴속도 가득 채울 수 있는 음식은 없을까? 엉뚱한 호기심을 가지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였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잔치국수를 좋아했다. 대학시절에는 점심때 행주산성까지 국수를 먹으러 가곤 했다. 그래서 얼마 전 남해여행을 갔다가 육수용 멸치와 디포리를 사왔다. 하지만 집에서 육수를 내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산에 유명한 잔치 국숫집이 있는지 궁금해졌고 검색을 해보니 무려 생활의 달인에 나온 정평할매국수라는 식당이 있었다. 거리가 멀지 않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한적한 옛날 아파트 옆 오래된 전통시장형 상가 구역 안에 가건물 형식으로 조촐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잔치 국숫집은 인테리어와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풍x면, 국x나무 등과 같은 프랜차이즈는 비용 투자를 음식에 집중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프랜차이즈 창업에 필요한 임대료와 가맹비, 인테리어 비용 등 쓰이는 돈들이 한두 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를 포기하고 맛에 올인을 한 듯한 식당에 들어서면서 불쾌감보다는 기대감이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인건비도 절약하시는지 주문도 입구에서 하고 들어가야 했다. 잔치국수 한 그릇 국물은 아주 뜨겁게 달라고 주문을 호기롭게 하고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정겨운 쟁반에 잔치국수와 육수가 담긴 주전자, 반찬, 그리고 수저까지 한꺼번에 나오니 마치 새참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반찬은 김치와 깍두기, 푹 익은 된장고추장아찌가 나왔다. 하나씩 맛보니 전반적으로 맛이 달짝지근했다. 특히 깍두기는 많이 달았는데 잔치국수의 다소 밋밋할 수 있는 맛을 보완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았다. 배추김치와 고추장아찌는 특별한 맛은 없고 무난한 맛깔스러운 맛이었다. 잔치국수 고명으로는 생으로 채소들이 올라가 있었다. 오이와 단무지, 당근, 김가루 그리고 양파가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특이하게 썰어져 나왔다. 당근 정도는 살짝 볶아 나오는 집도 있다. 고명은 조리하지 않은 생생한 재료 그대로여야 육수의 맛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 집의 국수에 대한 철학이 아닐까 싶다.
본격적으로 잔치국수를 맛보기 위해 주전자에 담겨있는 육수를 조심스레 부어보았다. 김이 매섭게 올라오는 것이 사장님께서 나의 개인적인 주문을 귀담아 들으셨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잔치국수는 면을 삶은 뒤 찬물에 씻어야 면의 찰기가 제대로 오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당에서 그렇게 한다. 하지만 면이 차가우면 따뜻한 육수를 붓더라도 결국 미지근해지는데 필자는 그것을 싫어한다. 어떨 때는 면의 한기가 육수의 온기를 그대로 짓눌러버려 국물이 차가워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육수 재료의 특성상 멸치의 비릿한 맛이 더 강하게 느껴져 먹기에 거부감이 생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잔치국수를 주문할 때 항상 국물을 뜨겁게 해 달라고 한다. 주문대로 아주 뜨겁게 나온 육수를 붓고 면을 살살 풀어 한 젓가락 먹으려고 하는데 깜짝 놀랐다. 면의 양이 엄청 많았다. 여느 프랜차이즈 국숫집의 곱빼기 양과 비슷한 정도였다. 가격도 5,000원이면 비싼 편이 아니고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음식에 집중을 할 수 있는 식당의 장점인 것 같다. 맛과 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잔치국수였다. 육수를 그릇에 넘치듯 가득 붓고 면을 살살 풀었다. 먼저 국물을 맛보았는데 정성과 노력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멸치의 어향이 정직하고 시원하게 느껴졌고, 디포리를 넣으셨는지 달짝지근하게 감칠맛이 좋았다. 양파나 파, 다시다 등 멸치육수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재료를 정직하게 넣고 오랫동안 푹 끓여 낸 맛이었다. MSG의 자극적인 혀에 지배적으로 느껴지는 감칠맛은 전혀 없었다. 다만 양파가 들어갔는지 끝에 단맛이 계속 느껴지고 맴돌아 조금 아쉬웠다. 고명으로도 단무지나 생양파가 기본적으로 단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단 걸 싫어하기 때문에 독자분들께서 감안해 주시길 바란다. 단맛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양념장을 넣었는데 괜찮았던 것이 양념장이 간장베이스라기 보다 액젓 베이스인 것 같았다. 짠맛보다는 짠향이 먼저 느껴져서 조금 넣으니 멸치국수의 어향이 더 풍부해진 것 같았다. 면은 치자가 들어있는지 색이 노란 것이 예뻐 보였다. 1인분씩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정확히 삶는지 면의 시작부터 끝까지 골고루 잘 익었고 찬물에 충분히 씻어서 밀가루의 풋내는 나지 않고 쫄깃쫄깃 찰기를 충분히 가지고 있어 먹는 식감이 좋았다.
사실 국수는 게걸스럽게 먹어야 제맛이다. 예전에 필자가 먹던 방식으로 거의 씹지도 않고 후루룩 면을 목구멍으로 마구 집어넣고 육수를 후루룩 마셔 윗속으로 밀어 넣으니 포만감은 확실히 금방 차올랐다. 대학생 시절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었기에 이제는 옛 방식으로는 먹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조금씩 꼭꼭 씹어 재료의 맛을 꼼꼼히 느끼고 식사시간을 즐기는 방식이 건강에도 좋고 음식에 대한 예를 더욱 차리는 자세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천천히 면발 한올 남김없이 식사를 마치지 어느새 배가 아주 불러 일어서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이런 것이 잔치국수의 묘미이지 않을까. 잔치국수는 화려하진 않지만 좋게 말하면 수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밋밋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무난함이 나를 무장해제 시키고 편안하게 국수를 막 즐길 수 있게하는 것 같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허전한 내 가슴을 가득 채워준 음식이 바로 따뜻한 잔치국수이지 않을까..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