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진짜 중국가정식 맛집
이른 저녁 라면에 콩나물을 넣고 끓여서 김밥과 함께 먹을까. 콩나물국밥을 먹을까. 무엇을 먹을까 복숭아씨과 이야기를 하다가 얼마 전 방문하여 먹었던 중국 가정식이 문득 떠올랐다. 때마침 베놈이라는 미국영화를 보았던 참이었는데 거기서 나온 사각형 종이 도시락에 담긴 볶음 누들이 머릿속에서 자꾸 맴돌았다. 모음맛집에 그와 비슷한 음식을 팔지 않을까 예상을 하며 집과 그곳으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혹시나 영업시간이 아닐 수 있어서 전화로 영업하는지 확인까지 하고 방문하였다. 전화번호는 인터넷을 검색하여도 나오지 않기때문에 간판에 있는 번호를 남긴다.(Tel. 053-955-0093)
식당에 도착을 하니 중국인으로 보이는 손님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손님은 그 사람들과 우리 둘이 다였다. 입소문이 아직 퍼지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한국의 반중 감정이 한몫 하여 방문하는 손님이 적은가? 측은지심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 못하는 식당의 현실에 아쉬운 감정을 한꼬집정도 느꼈다. 아쉬운 감정을 뒤로하고 메뉴판을 스캔하였다. 50여가지 다양한 메뉴라니.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채로 정말 혼란스러울 것 같다. 한가지 주의점은 이 식당에서는 현지 중국음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한국화 된 짬뽕이나 짜장면은 판매하지 않는다.
장고 끝에 영화에서 보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미국식 중화 볶음면이라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계란볶음면을 하나 주문하였고, 어향 소스를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나를 위해 복숭아씨가 어향 소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추천해 주셔서 어향가지를 주문하였다. 이 정도 양이면 저녁식사로 적당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복숭아씨께서 확고하게 '밥'을 먹고 싶다고 하셔서 부추계란덮밥까지 식사 2개, 요리 1개 총 3개 주문하였다. 둘이 먹기에 많을 수 있는 양에 거북한 포만감이 생길까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맛있으면 그만 아닌가. 남으면 포장해서 오면 되는 것이고. 쓸데없는 기우는 녹여버렸다.
사장님께서 주방에서 조리하는 즉시 본인이 서빙을 해 주셨다. 가장 먼저 나온 음식은 어향가지였다. 갓 만든 어향가지는 김이 모락모락 풍기는것이 어향이 마치 눈으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맛깔스러운 비주얼에 젓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저절로 향했다. 어향소스의 향은 식욕을 자극하는 중화요리의 고소하면서 살짝 매콤한 향이 주로 났지만 깐풍기같은 음식에서 살짝 느낄 수 있는 코를 찌르는 시큼한 향은 전혀 없었다. 입안에 넣으니 처음 0.5초는 바삭한 겉면이 식감이 느껴졌고, 그 후 순식간에 속의 부드럽고 몽글한 가지의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난생 처음 맛본 어향소스는 간장베이스의 간간하게 짭조롬한 맛이 60% 기름의 고소한 맛 30% 정도로 잘 어우러졌고 나머지 10%는 한국고추와 태국고추가 심심하지 않게 적절하게 커버해 주었다. 필자의 미각으로는 어향소스는 한국의 다진 양념에서 다진 파와 마늘을 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알싸하고 매운맛이 강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게 속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 기름에 가지가 충분히 튀겨져 나온 모습을 보니 고구마 맛탕이 생각났는데, 그 기대에 부흥하듯 중간중간 히든카드로 달콤한 고구마가 몇 개 정도 있으면 먹는데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장난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향가지를 충분히 즐기고 있을 즈음 내가 주문한 계란볶음면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조리 직후여서 음식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면이 잘 볶아져 거뭇해진 모습을 보자마자 먹지도 않았는데 만족감을 느꼈다. 미국영화를 보고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원하던 딱 그 비주얼이었다. 보기만 해도 이미 맛이 예상되었다. 복숭아씨는 왠지모르게 콩나물을 먹고 싶었는데, 우연하게도 볶음면에 콩나물이 들어있어서 좋아하셨다. 볶음면을 살포시 덮고있는 계란이 갈색으로 그을려져있어 너무 익은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젓가락을 갖다 대니 힘을 주는 대로 계란이 쉽게 찢어졌다. 찢어진 계란 조각과 면을 함께 입안으로 넣었다. 면은 강한 불에 볶아서 그런지 수분기가 없어 약간 퍽퍽하였다. 그런 퍽퍽한 부분을 촉촉하고 부드러운 계란이 잘 잡아 주었다. 기름기가 다소 많아 먹다 보면 입안이 느끼해져서 김치 생각이 나지만 함께 볶아졌지만 아직 수분을 머금은 채소들과 함께 먹으니 느끼함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중요한 것은 간장베이스의 양념에서 살짝 꾸릿꾸릿한 장맛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그 풍미가 그득하게 짭쪼름한 맛이 침샘을 자극하여 입안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이 필자에겐 일품이었다.
마지막으로 계란부추덮밥이 나왔다. 비주얼이 음식 이름 그대로 부추와 계란이 밥을 덮고 있는 정직한 모습이었다. 밥의 양이 너무 많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왔다. 마치 억지로 자리한 불청객을 맞이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가 초대한 손님인지라 최대한 환대를 해주기 위해 한 숟갈 듬뿍 들어 보았다. 입안에 넣고 씹자마자 처음 느낀 맛은 짰다. 마치 맛소금만으로 간을 과하게 한듯한 맛이었다. 쌀밥과의 비율로 봤을땐 전부 함께 비비면 간이 딱 맞을 것 같았지만 밥을 많이 먹지 않는 스타일인 나에겐 부추&계란과 밥의 비율을 1:1 정도 맞추었을 땐 짜웠다. 자연스럽게 밥의 비중을 높일 수 밖에 없는 간이었다. 원래 부추는 데치거나 익히면 고기와 같은 육중한 식품을 자연스럽게 받쳐주는 역할을 잘 소화하는데, 계란과 함께 서로 주인공이 되려고 하니 음식에서 불협화음이 느껴졌다. 싹싹 남김없이 긁어먹은 계란볶음면과는 다르게 부추계란덮밥은 다 먹지 못하고 남아서 포장을 해왔다.
이번에도 모임식당에서 새로운 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어 나에겐 좋은 경험이었다. 이번에 맛본 음식 중에는 맛있는 음식도 있었지만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었는데 불만감은 많지 않고 오히려 더 좋았다. 나에게 딱 맞고 좋은 것들만 있는 세상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만약 그러한 세상이 있으면 영화 '트루먼쇼'처럼 누군가가 조작하고 있지 않을까 세상에 대한 의심이 생길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음식도 즐기고 또 반대로 맞지 않는 음식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러한 새로운 경험이 나에게 다양한 미식 데이터로 저장 되어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중국음식이 생각난다면 한 번씩 들러 새로운 요리를 먹고 싶다.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있는 좋은 맛집을 찾아낸 것 같다.
Tip. 중국 음식은 조리 특성 상 많은 기름에 조리를 하기 때문에 포장해서 나중에 먹을 시 기름의 산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음식이 쉽게 상할 수 있음. 반드시 빨리 먹거나 밀폐용기에 옮겨 냉장보관하세요.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