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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부자기 Apr 18. 2024

4월의 나무 같은 나의 40대

아름드리 찬란하게 초록이 될 여름을 기다리며

이틀 전, 동네 회의가 있어서 마을 몇 블록을 걸었다. 해가 늬엇늬엇 질 무렵이어서, 길가에 핀 수선화와 튤립을 더불어 벚꽃을 만끽하며 걸었다.


"하.. 예쁘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뉴요커의 걸음이 아닌 4분의 3박자 춤을 추듯 천천히 걸었다. 땅만 보며 한참을 걷다가 시빅센터에 거의 도착해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커다란 가로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역광이어서 나무의 디테일은 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 형태가 또렷하게 보였다. 굵고 단단한 기둥을 거쳐 길게 쭉 뻗은 가지들과 자잘 자잘 잔가지들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구형을 만들어 내었다. 키는 3미터가량 되는 가로수이기에 사방에서 빛을 보고 골고루 가지를 뻗었으리라. 겨우내 추웠을 가지들 끝에서 손톱만 한 작은 새싹들이 오밀조밀 붙어있었다. 어렵사리 틔웠을 싹이라 그런지 뭉클한 감동마저 밀려오는 게, 마치 40대 초반의 나를 보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무야.

이렇게 커다란 구 모양으로 뻗어나가느라 얼마나 노력했니. 가지 끝에서 이제 조금 싹이 나기 시작해서, 언제 너의 몸을 다 덮을 무성한 잎을 만들어낼까 싶지? 시간이 지난다고 모두가 무성한 나무가 되지 않지만, 너는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았네. 지금처럼 광합성 열심히 하고 양분을 잘 흡수해서 저 싹들을 잘 키워보렴. 어느덧 6월이 가고 7월이 될 때즈음에는 너의 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한 잎으로 가득 찰 거야. 그럼 너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그림자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청각장애인들에게 갓깃을 알리는 바스락 소리를 들려줄 수도 있어. 새들에게는 쉼터가 되어주고, 예술인에게는 영감이 될 수도 있지. 겨울이 되면 다시 잎이 지고 추운 시간이 시작되겠지만, 너는 또다시 내년 4월이 되면 이렇게 싹을 틔울 거야. 한 줄 더 생긴 나이테를 뱃속에 감추고.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나무를 다시 보려 했지만, 해가 져버려서 어두움에 숨어버린 나무를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볕이 좋은 5월에 이 나무를 응원하러 다시 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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