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레이어의 순간적인 고민들이 반복하여 여러모로 스치는 날들이었다. 순간에 고개를 푹 숙이기도 하는가 하면, 어떠한 것들은 그 순간에 휘발되었다. 얼마 전에는 취미 삼아 시집을 내었다는 말을 내뱉었다. 며칠은 반추하고, 며칠은 흘려보냈다.
날들이 부단하다. 끊임이 없고, 결단성도 없다. 우연하게 아빠가 몇 년 전 갓 이십 대가 된 나에게 쓴 편지를 발견하였다. 아빠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꾸준하게 실용적이시다. 당신이 헌신했던 회사에 근무하는 인턴-사원 급의 고민들을 내게 나누어주셨다. 나의 약 오 년 후를 염두하여 적은 것이 티가 났던 글이었다. 늘 자신의 방식으로 날 사랑해 오셨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찬기가 도는 주방에 불을 지폈다. 대충 밥을 퍼 김치와 몇 가지 안 되는 반찬들로 식사하시려는 아빠를 붙잡고 십분 내에 돼지 두루치기를 만들었다. 와 이거, 내가 만들었지만 솔직히 팔 법하다. 오늘은 잘 됐네, 하면서 멈추려는 아빠의 수저를 늘어뜨린다.
쉽게 말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나도 나를 절제할 줄 알게 된 것만 같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절제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복기하는 일이다. 어려운 일이다. 며칠 전엔 회사에서 쓸 다이어리를 구매하였는데, 다이어리 칸이 너무 작아서 쓸모가 없어 도로 가져왔다. 그래서 그 작은 칸에 하루 있었던 감사한 일을 적기로 했다.
칸이 크지 않기에 몇 줄 못 쓴다. 대략 손가락 세 마디 만한 정도다. 그러면 또 대략 여섯 가지가 평균적으로 적을 수 있는 수다. 제발 끈기 있게 다이어리를 다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빌어본다.
아빠는 칼과 같이 시간을 자르신다. 거실에서 TV를 보다 방에 들어가시는 시간 10시 00분, 취침하시는 시간 11시 00분 대략 이런 식이다. 왜소해진 아버지를 보면 이제 약간의 연민까지 들 정도다. 호랑이가 따로 없던 아버지가 집에서 이모저모를 고치시며 시간을 보내시는 걸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가도 뻔떡이는 집이 좋기도 하다. 요 며칠은 에어컨을, 또 그전에는 냉장고를 고치셨다.
아빠가 적적하지 않게 가끔 말을 붙인다. 손가락 힘을 다해 애교스럽게 팔뚝도 긁어본다. 간단하게 식사하시려는 것을 멈추고 호로록 찌개니 밥이니 덧붙여본다. 엄마 없이 지내는 평일에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해 드려야겠다고 두루치기를 잘 드신 아빠를 보며 되새겨본다. 심지어 어제의 감사일기 마지막 줄은 ‘내가 끓인 찌개이지만 맛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정도면 미니 효도다 싶은 거다.